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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부인
삶의 뜨락  
작성자 김혜승
작성일 2018-11-28 (수) 12:48
분 류 마르지 않는 샘
ㆍ조회: 70      
자기부인

최근, 몸도 피곤하였고 더불어 동반된 영적 건조함으로 인해 너무나 괴로웠다. 가을학기 내내 학업과 동시에 진행한 일들이 많다는 이유로 규칙적인 경건생활들을 하지 않았으니 당연한 결과이다.

그러다 월터 J.챈트리의 자기부인이라는 책을 읽고 많은 도전과 결단을 하게 되었다.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우리가 하나님의 피조물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다고 가르치지 않는다. 대신 우리가 하나님을 섬길 때, 마음껏 즐기고 사용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고 가르친다. 우리의 눈은 우리가 먹고 마시는 것이 주님을 위한 것인지 아닌지를 확인하기 위해 내면으로 향해야 한다. 우리의 비판적인 눈은 우리 형제의 행위로 향하지 말고, 우리 자신에게로 향해야 한다. 우리가 살펴야 할 것은 외적 기준이 아니라 내적 동기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종종 행동의 문제를 결정하려고 할 때 정반대의 방법을 사용하곤 한다. 그들은 자기 자신을 보지 않고 다른 사람들을 보는 경향이 있다. 주님을 위하여 그의 자유를 사용할 권리가 분명 그에게 있었다. 하지만 자기탐닉을 위해 자유를 사용할 권리는 그에게 없었다.

 

자기 영혼을 꼼꼼히 살피는 사람들은 그 자체로서 악하지 않은 것들까지도 포기하기 시작할 것이다. 자기를 부인하고 하나님께 가장 큰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기 위해 그들은 그 자체로서는 선하지도 않고 악하지도 않은 것들을 포기할 것이다. 고린도전서 9장에서 바울은 자기가 정당하게 즐길 수 있지만 스스로 포기한 것들을 열거한다. 바울은 그것들을 누릴 권리가 자기에게 있지만, 주님을 위해 자기의 육신을 이기고 그것들을 포기했다고 말한다. 그는 주님을 위해 정당한 권리를 포기했다. 그가 이 같은 사실을 언급하는 이유는 다른 사람들도 자기처럼 결혼과 보수와 포도주를 포기하도록 만들기 위함이 아니라, 자기부인의 필요성을 예를 통해 말해주기 위함이다.

바울처럼 우리도 그리스도의 이름을 높이기 위해 포기한 정당한 즐거움들을 열거할 수 있는가? 만일 우리가 구체적인 경우들을 열거할 수 없다면, 우리는 우리의 육신적 탐닉에 바쳤는지 아니면 왕이신 그리스도를 위해 바쳤는지를 다시 한 번 물어야 할 것이다. 자유는 지극히 높으신 분께 영광을 돌리는 도구가 될 수도 있고, 아니면 저급한 육신적 탐닉을 가리는 은폐 수단이 될 수도 있다. 자유가 이 두 가지 중에서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알려면, 우리의 마음을 스스로 살펴야 한다.

그리스도인에게 자기부인이란 단어는 밥상에 놓인 수저를 보는 느낌이다. 밥상위의 숟가락과 젓가락. 당연히 놓여 있기에 없으면 밥을 먹을 수 없는 도구임에도 너무나 존재만 익숙하여 두드러진 존재감을 느끼지 못하는.

 

가끔 속으로 한마디씩 한다. ‘맨날 그놈의 자기부인.’ 할 일은 밀려있는데 정말 꼼짝하기 싫어 짬나면 누워 잠을 청하고 TV리모컨으로 의미 없는 채널 돌리기를 반복하는 시간을 보냈다. 영적바닥의 정점을 찍은 것이다. 마음은 찔리지만 행동이 변하지 않는 나에게 어김없이 주님께선 사랑의 책망을 하셨지만 조금 미루고 싶은 마음이었다. 왜냐하면 영혼은 메말라가도 육신은 만족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를 바라보는 어리석은 마음으로 감사의 은혜도 놓치고 있었음을 고백한다.

우리가 가장 감사해야할 것은 구원에 대한 감사인데 구원에 대한 깊은 은혜의 체험을 잊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기에 원망과 불평이 나를 바라보게 하고 그리스도인으로서 자족하는 마음이 사라진 것이다. 하지만 이대로 가다가는 걷잡을 수 없을 것 같아 두려운 마음으로 기도를 드렸다. 모든 것을 고백하고 책망에 대한 투정도 부렸다. “주님, 조금 너무 하신 거 아니에요? 제가 계절과 시절을 따라 어디 놀러 다닌 것도 아니고 친구들을 맘껏 만난 것도 아닌데그런데 이런 맘도 저를 사랑하는 이기적인 마음인거 압니다. 주님, 제 마음에 신호등이 되어 주세요. 저의 힘으로는 되지 않지만 자비하신 주님께서는 저의 손을 놓지 않으실 것을 믿습니다. 다시 주님 한 분만으로 만족된 삶을 사랑하고 순종하게 해주세요.” 그리고 자비하신 주님께서는 잠시 잊고 있었던 예수 안에서만이 진정한 자유가 있다는 것을 말씀과 환경으로 알려주셨다. 감사함으로 다시 마음에 새긴다. 이 광야의 주인공은 바로 라고.

김혜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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