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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기철1] 머리를 빡빡 깎고 신학을 결심하기까지
빛과 사람들  
작성자 편집부
작성일 2018-10-05 (금) 13:21
ㆍ조회: 223      
[주기철1] 머리를 빡빡 깎고 신학을 결심하기까지

어린 시절

주기철 목사님은 경남 창원군 웅천면 북부리에 있는 농가에서 주현성 씨와 조재선 여사 사이에 4남으로 태어났다. 어릴 때 이름은 기복이었다. 세 형과 세 누나가 있었는데, 철이 들면서 자신이 배다른 형제임을 알게 되었다. 형들과 누나들이 엄마가 없는 것을 알고 그들에게 미안하여 엄마 곁에서 자지 않고 형들과 함께 잘 정도로 정이 많고 남을 배려할 줄 알았다. 또한 어릴 때부터 총기가 뛰어나 어느 것 하나 예사로 보지 않았다. 8세 때 개통학교에 입학했다. 나이도 어리고 몸도 허약하였지만 성적은 월등하게 뛰어나 선생님들의 주목을 받으며 신동이라 불리기도 하였다.

을사늑약이 체결되고 한일합방이 되었을 때 어른들이 모여 통탄하며 눈물을 흘리고, 더러는 무능한 조정을 원망했다. “이렇게 어이없이 일본한테 목이 매여 끌려가야 하는가?” 일본의 무자비한 통치아래 노예생활을 하는 망국의 한을 들으며 함께 슬퍼하고 분노를 느꼈다.

나라 잃은 사람들은 방황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혹시 구원받을 길일까 하여 더러는 동학 편에 서고, 더러는 천주교로 들어갔다. 또한 일손을 놓고 몰려다니며 진탕 마신 후 울분을 쏟아놓으며 절망하는 젊은이들도 많았다.

기복이의 집에서 가장 먼저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은 큰 형 기원이었다. 기원은 웅천읍에다 조그마한 교회당을 세웠다. 그래서 기복은 친구들과 함께 열심히 주일학교에 다녔다.

 

가자 오산으로

개통학교에 다닐 때 아직 20세인 춘원 이광수가 부산 지구로 순회강연을 나왔다가 개통학교에 들러, “학문은 아무도 빼앗을 수 없으니 젊은이들이 열심히 배우고 나라를 다시 찾아야 우리들의 미래도 열린다.”고 열변을 토하면서 오산학교를 소개했다. 이에 가자, 오산으로!” 뜨거운 마음으로 결심했다. 그곳은 1,500리 길이나 되는 먼 길이어서 가족들이 반대하였으나 뜻을 굽히지 않고 사촌형인 주기용과 함께 오산학교에 입학했다. 떠나기 전에 이름을 기철로 바꾸었다.

오산학교. 설립자 남강 이승훈은 105인 사건으로 감옥생활을 하고 계셨다. 그는 가난한 시골 선비의 아들로 태어나 일찍 부모를 여의었으나 자수성가하여 우리나라에서 첫손 꼽힐만한 대실업가로 성장하였다. 그러나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으로 많은 돈을 잃어버리면서 모든 것이 헛됨을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40세에 공부를 시작하였다. 얼마 후 평양에서 열린 안창호 선생님의 교육진흥론을 듣고 그 자리에서 상투를 자르고 금주금연을 선언하신 뒤에 청결하게 삶을 사시다가 190743세에 오산학교를 설립했다.

그런데 그 남강 이승훈을 전도한 사람이 바로 유영모 선생이었다. 수업을 시작할 때 기도로 시작하였다. 싫어하는 학생들도 있었으나 상관치 않고 계속했으며 교과에도 없는 성경을 학생들에게 가르쳤다. 그러자 학생들이 변화되기 시작했다. 이때 남강 선생도 기독교가 무엇인지 알아보기 위해 교회를 찾아다니다가 예수님께 사로잡혀 학교교육의 근본을 기독교 정신에 두면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 하신 말씀을 잘 삭혀야만 합니다. 나라도 중하지요, 내 민족이 겪는 고난은 뼈를 깎는 고통입니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구해야 할 것이 하늘나라와 하나님의 의라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영하 20도의 강추위에도 날마다 냉수마찰을 하고, 안락의자에는 앉지 않고 상위에서 가부좌를 하고 앉아서 몇 시간이고 명상에 잠기는 등 학생들에게 수도적인 생활의 본이 되셨다.

이광수 선생님의 후임으로 오신 고당 조만식 선생님은 무저항 민족주의자 간디를 존경하며 자신도 그러한 삶을 살기 원하였다. 소금으로만 양치질을 하고, 팥비누로 세수를 하며 평생 국산품밖에 쓰지 않는 조만식 선생으로부터 기철은 애국정신을 배웠다.

1915, 기철이 오산학교 3학년 때 남강 선생은 감옥에서 풀려 나셨다. “내가 하도 바쁘게 동분서주하다 보니 성경을 읽고 묵상할 시간이 없었는데, 감옥에서 하루 종일 마음 놓고 성경을 읽었지요, 구약을 수십 번 읽고 신약을 100독은 했을 게요, 아마 오산 학교 젊은이들한테 내가 좀 부족한데가 있어서 성경말씀을 읽고 좀 더 성숙하라고 감옥엘 보내셨던 게요.”

그분은 변소청소도 손수 하셨다. 시간 중에 들어오셔서 공부를 함께 하실 때도 있었다. 더러 학생들이 빗자루를 빼앗으려 하면 웃으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사람 구실 할 수 있는 게 이 일뿐인데 이것마저 빼앗으려는가? 나는 배운 게 없어서 여러분을 가르칠 힘이 없어요. 그러니 여러분이 공부하는 자리를 깨끗하게 치워드리는 것이 내 기쁨이오."

이렇게 훌륭한 선생님들의 사랑과 가르침을 받으며 민족애가 강하여지고 하나님께 대한 신앙심도 굳어졌다. 당시 학교 분위기는 프랜시스의 평화의 기도를 외우거나 토마스 아 켐피스의 그리스도를 본받아라는 책이 유행할 정도로 경건했다.

19164년 동안의 공부를 마치고 우수한 성적으로 오산학교를 졸업했다. 남강 선생과 고당 선생은 기철에게 많은 기대를 품으며 오산학교의 기둥으로 쓰고 싶어 하셨다. 남강 선생은 기철에게 경제를 부흥시켜 민족 산업을 일으키는 좋은 재목이 되어주기를 바란다며, 연희전문학교의 상과에 진학하기를 권유하였다.

 

3의 존재를 찾아서

연희전문학교에 들어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어렸을 때부터 앓던 고질병인 안질이 더 심해져서 공부하기가 몹시 힘들었다. 게다가 큰 형 기원이 하던 염전과 어업, 양조장이 한꺼번에 기울어져 재산 상속문제로 불화가 일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학업을 중단하고 집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그 후 상속문제도 어느 정도 해결을 보고 눈도 나았지만 몹시 쓸쓸한 나날을 신앙으로 달래면서 살아갔다. 새벽기도에 열심히 참석하고 청년집회에도 부지런히 나가서 봉사했으나 무엇인가 비어있는 듯 한 허전한 마음은 채울 길이 없었다. 그러던 차에 이기선 목사님이 소개해준 안기영씨의 막내딸 안갑수와 결혼생활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마음 편하게 가정의 행복 속에 빠져있지는 못했다. 친구 이약신과 함께 청년 운동을 하느라고 바쁘게 뛰어다녔다. 그러나 때때로 마음은 감당할 수 없는 허망함에 빠지곤 했다.

많은 기대 속에서 흥분하며 일어났던 3·1운동이 실패로 끝났기 때문에 많은 신자들이 회의에 빠지게 되었다. 그래서 교회를 세웠던 큰형도, 작은형도 교회를 등졌다. 교회에서 십여 년이나 봉사하던 형들이 불신으로 빠지는 것을 보며 갈등은 더욱 깊어만 갔다. “아아 이것도 아니다. 정녕 삶은 이것만이 아닐 것이다.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나라를 위하여 독립을 쟁취하겠다고 몸부림을 치는 이것만도 아닐 것이다. 그러면 제3의 그것이 존재하는 것인가, 왜 나는 그것을 아직도 만나지 못하고 있는가!”

 

거듭난 생명

그렇게 1년이 지나 첫아들 영진이가 돌이 될 무렵 마산 문창 교회에서 김익두 목사를 모시고 부흥 사경회를 연다는 소식을 듣고 사람들이 술렁거렸다. 소경이 눈을 뜨고 앉은뱅이가 걸으며 귀머거리가 듣는 기적들이 많이 일어난다고 했다. 그 소문을 듣는 순간 가슴에서 무엇인가 뜨거운 것이 분출했다. 그리하여 문창교회로 가게 되었다.

그곳은 울며 회개하는 사람, 병 고침을 받았다며 함성을 지르는 사람, 방언이 터진 사람, 각양각색의 사람들로 예배당이 가득 찼고 모두들 매어 달리는데, 기철과 친구들만 구경꾼에 불과했다. 그러면서 왜 우리는 은혜를 못 받는가?” 안타까움과 분함으로 답답해했다. 셋째날 밤 집회에서 김익두 목사님은 성신을 받으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하셨다. 장내는 성령의 불길로 휩싸였다.

장님의 눈을 뜨게 만드는 것은 내가 아니라 예수님이요! 귀머거리의 귀가 뚫리는 것은 내가 하는 일이 아니라 예수님의 이름으로 성령이 하시는 일이오! 김익두는 막대기요, 김익두는 없소! 마음이 가난한 자, 마음이 청결한 자는 지금 이곳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볼 것이오!”

이때 바윗돌보다 더 무거운 자신의 죄를 깨닫고 갑자기 통곡과 함께 눈물을 쏟기 시작했다. 그 자리에 고꾸라지면서 방성대곡을 터뜨렸다. 남의 시선도 아랑곳하지 않고 오직 사랑의 주님만 느꼈다. 울고 또 울어도 눈물은 그치지 않았다. 어둠 속에서 헤매며 찾던 그 빛, 허망함 속에서 그렇게 갈망했던 그 존재를 드디어 찾은 것이다. 이제 성령으로 새롭게 태어난 것이다.

야아, 우리는 살았어! 우리는 정말 새 생명을 얻었어!” 갈급해하던 친구들은 예수님을 만난 기쁨과 감격으로 모두 눈물범벅이 되어 서로 얼싸안고 뒹굴었다. 이 악한 세상에 진정한 도는 살아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따르는 것뿐임을 알게 되었다.

그해 111일 주기철과 그의 친구들은 신학생이 될 것을 결심했다. 이 소식을 들은 형님들은 모두 화를 내며 반대했다. 그러나 머리를 빡빡 깎고 결심을 새롭게 했다.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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