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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기철2]주님위해 목숨 바치는 일엔 앞장서리라
빛과 사람들  
작성자 편집부
작성일 2018-11-07 (수) 15:21
ㆍ조회: 235      
[주기철2]주님위해 목숨 바치는 일엔 앞장서리라

평양신학교 시절

미래를 보장해줄 수 없는 이국땅에 와서 고스란히 자신을 바치며 헌신하는 선교사들을 바라보면서 가슴엔 뜨거움이 솟아오르고, 저절로 고개가 수그러졌다. 신학생 대부분은 전도사나 조사 노릇을 하며 봉사했는데, 기철은 16년 전 호주의 손안로 선교사가 설립한 양산교회에 전도사로 봉사했다. 열렬한 성도들이 있고 번듯한 예배당도 있었지만 아직 목회자가 없었던 것이다. 평양서 양산은 기차로 하룻길 되는 1500여리, 매주 양산엘 오르내리니 얼마나 힘들었을까! 어머니와 아내는 기철을 생각하며 노심초사했다. 그러나 조금도 고생스럽거나 힘들게 여겨지지 않았다. 그 길은 자기가 살 길이며, 하나님께서 주신 길이었기에.

졸업을 몇 개월 앞둔 어느 날, 남강 선생님이 친히 학교로 찾아오셨다. 옥고를 치르고 60을 넘기며 연로해 가시는 모습을 뵈니 송구하면서도 가슴이 아팠다. 남강 선생님은 그윽한 눈길로 기철을 바라보시며 말했다. “우리 조선의 독립은 오직 교육에 달려있어. 이것은 나 혼자의 뜻이 아니라 2천만 우리 조선의 요청으로 들어야 하네. 자네야말로 사람을 키워야 할 인재야. 이제 신학교도 마쳤으니 일본에서 유학하여 오산학교를 맡아주어야겠어.”

 

자신을 이토록 믿어주시는 선생님이 너무나 감사했지만, 이 제의가 기철에게는 유혹이었다. “죄송합니다. 선생님의 뜻을 잘 알고 있지만, 이미 제 몸을 하나님께 다 바쳐버렸습니다. 한 사람이 두 길을 갈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선생님은 아무 말 없이 창문 쪽으로 한참 눈을 돌렸다. “그래내 욕심이 지나쳤어. 자네는 이제 우리의 목자가 되어야 하지. 영혼을 도둑맞지 않도록 지켜 줄 목자가 더 필요해. 흔하면서도 귀한 것이 사람이거든.”

한편, 일본 총독부는 조선 호적령을 공포(1922)하고, 이탈리아의 무솔리니는 파시스트 내각을 조직했다. 전 세계가 뒤숭숭했다. 그때 동경을 중심으로 관동 일대에 엄청난 지진이 발생했다. 두려운 재앙 앞에 민심이 흉흉해지니까, 이를 수습해 보겠다고 궁리를 짜낸 것이, “조선 사람이 불을 지르고 약탈을 일삼으며 우물마다 독을 풀어 죽이려 한다는 소문이었다. 그리하여 혈안이 되어 조센징을 찾아다니며 칼, 죽창, 몽둥이로 마구 죽인 것이 수천 명이었다. 게다가 러시아 중국 등지에 열병처럼 퍼진 공산주의가 우리나라에까지 전염되고 있었다. 그래서 사회 청년운동을 틀어잡고, 정면으로 교회에 도전해 왔다. ‘하나님, 이 민족이 살 희망은 주님밖에 없습니다. 불쌍히 여겨 주소서!’

 

초량교회의 위임목사

나이 서른! 19263월 평양신학교를 19회로 졸업했다. 신학교를 다니는 동안 두 번째 아들 영만이와 세 번째 아들 영묵이가 태어났다. 자식이나 아내를 호강시킬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기에 기쁨보다는 부끄러움이 앞섰다. “예수님이 가신 길을 뒤따라갈 수가 있을까? 세 아들과 아내와 어머님을 이끌고 나는 목회자의 길을 가야한다.” 약간의 불안과 두려움이 있었지만 분명한 것은 주님께서 동행하시리라는 것이었다.

1926년 봄에 설립된 지 33년 되는 부산 초량교회 위임 목사가 되었다. 주목사는 비상한 고심과 정성으로 대개 목요일까지 설교원고를 작성했다. 원고를 작성하다가도 가끔 산에 올랐다. 방 두 칸에 어머니를 모시고 아이들과 함께 살았기 때문에 서재가 없어 집보다는 교회에서 많이 생활하며 산에 가서 철야하기가 일쑤였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감격과 기쁨이 넘쳤다. "내가 딴 일은 못하지만 주님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는 일에는 앞장서겠다."고 각오했다.

구봉산 바위굴에서 살다시피 하고, 교회의 교육이나 재정관리에 빈틈없이 철저했으며, 그의 사례비의 반은 교회로 되돌아왔다. 교회에서는 보릿고개 때도 점심을 지어 배고픈 사람을 먹일 정도로 구제와 선교에 힘썼다. 주목사는 기도와 철저한 생활, 보살핌으로 어수선한 시국과 기독교계를 성경말씀으로 지키며 든든히 기초를 다졌다. 그래서 위임받은 지 한 해 만에 100명의 교인이 300명으로 불어났다.

 

내일 일을 염려하는 것은 불신이요

구봉산에 올라가 기도할 때마다 늘 아내 몫으로 친정에서 주신 땅 6천 평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이 못내 양심에 걸렸다. “ 굶어 병들어 죽어가는 사람들이 있는 것을 뻔히 알면서 그 땅을 어떻게 끼고 있겠소? 내가 어떻게 강대상 위에서 성도들에게 가난한 자를 구제하라고 권면하겠소? 나의 아내인 당신이 주인이니 내가 전혀 무관하다 할 수 없는 게요. 처분하여 배고픈 사람들을 먹이고 봅시다.”

남편의 말이지만, 끝없는 목회자 가정의 가난한 살림을 하다 보니 자식들의 장래가 걱정되어 남겨두었던 어미의 마음인지라 부인은 계속 반대했다. “목사님, 굶는 사람들 구제도 좋지만 이렇게 자라는 아이들 앞일을 어떻게 하시렵니까? 아이들에게 무엇을 먹이고 무엇을 입히며 어떻게 가르쳐 사람 노릇하게 하겠습니까?”

여보, 내일 일을 염려하는 것은 불신이오. 하나님께서 우리 아이들을 굶기시거나 까막눈을 만드시겠소? 또 설사 그렇게 하신다 하여도 무슨 뜻이 있으실 것을 못 믿겠소? 당신이 그렇게 땅을 움켜쥐고 있는 것은 불신이오!” 아내는 자기의 마음을 몰라주는 남편이 야속해서 울고, 남편은 말씀을 함께 따르지 않는 아내가 서운해 좁은 길 가는 외로움을 느꼈다. 남편은 깊은 밤 기도처를 찾아 산으로 올라갔고 다음날부터 금식이 시작되었다. 아내도 밥이 들어가지 않았다. “하나님 아버지어찌해야 합니까?” 눈물로 기도한 후 결국 절반의 땅을 처분하여 구제했다.

한편, 그는 24회 경남 노회에서 부회장으로 피선되고 25회 노회에서 다시 유임. “왜 이 일을 맡게 되었을까?” 괴로워하며 고민하다가, 이제 시작될 신사참배 문제에 눈을 뜨고 노회와 교회들이 영적 전쟁 할 준비를 시키도록 하기 위한 하나님의 뜻을 깨달았다. 주목사의 제의로 경남노회가 신사 참배 반대를 결의한 뒤로 경남 일대의 교회는 뜻을 같이하기로 단단히 결속했다. “신사 참배는 십계명 중 엄연히 제1, 2계명을 어기고 우상을 섬기는 짓이다. 우리는 계명을 어기고는 살 수 없음을 천명하여, 일본이 받드는 신사 앞에는 결단코 나가지 않을 것이다.” 신사참배를 통해 우리민족의 신앙을 짓밟으려는 마귀를 정면으로 대적하고 나선 것이다.

 

상처받은 문창교회의 호소

문창교회는 주목사가 처음 성령 체험을 한 곳이었다. 예배당은 크고 재정도 튼튼했으나 목회자 문제로 늘 불안한 교회였다. 5대 위임 목사로 모신 박목사는 대단한 미남이었고 구변도 능란해서 사람들이 반할 정도였지만, 결국 과부 여전도사를 껴안은 것이 빌미가 되어 부정적인 소문이 났다. 교회는 물 끓듯 하다가 결국 간음미수라는 제7계 범과로 노회에 박목사를 고소하였고, 박목사는 오히려 자신은 북부 출신인데 남부지방 목회를 하다가 억울하게 누명을 쓰게 된 것이라고 총회에 탄원했다. 이 문제는 결국 남북 대립 분쟁으로 확산되었다.

노회 총회간의 싸움이 되고 교회는 교회대로, 집집마다 부모 자식 간에 싸움이 되었으며, 예배당에서는 주일마다 난투극이 벌어졌다. 결국 박목사는 평양 모란 공원에 자리를 펴고 사주쟁이 노릇을 했다고 한다. 마귀의 유혹에 빠져 정욕에 목을 얽은 채, 계속 회개치 않을 때 결말이 어떻게 되는가를 보여주는 표라 하겠다. 시련을 겪은 지 4년이 이르도록 계속 흔들리는 문창교회는 교회를 새롭게 이끌어 줄 인물로 주기철 목사를 청빙했다.

주목사 부부는 셋째아들 영묵이를 홍역으로 잃은 지 3년이 채 안되어 딸아이 영덕이도 잃었다. 자식을 가슴에 묻은 부모의 심정은 오죽했으랴! 자식들의 죽음이 무슨 예표인가 묵상했다. 자녀를 사랑했던 아비로서 하나님이 희생 제물로 아이들을 데려가신 뜻을. 몇 주 후에 문창교회 청빙위원들이 찾아왔다. 말씀과 기도로 살며 섬기던 초량교회 목회 5년 반! 구봉산 기도처에서 날이 밝도록 엎드렸다. 며칠 후 초량교회에 사임의 뜻을 밝혔고, 초량교회 온 회중이 눈물바다를 이루며 끈질기게 만류를 했지만, 주목사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흔들리지 않았다.

우리가 이제 헤어지는 것은 하나님이 지시하시는 전장으로 떠나가는 것이지요. 우리의 이 발걸음은 영적 전쟁을 향해 내딛는 첫걸음이 될 것이오. 우리가 각기 헤어져 가는 그 자리는 주님이 함께 하시는 영적 전쟁터인 것이오!”

(계속)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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