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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춘선목사1.아버지의 발을 닮으려면 아직 멀었습니다.
빛과 사람들  
작성자 요셉
작성일 2020-02-04 (화)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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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조회: 118      
최춘선목사1.아버지의 발을 닮으려면 아직 멀었습니다.
 하나님의 이끄심과 특별한 만남
최춘선 목사를 세상에 알린 분은 김우현 PD이다. 1995년 9월, 최목사님과의 처음 만남이 시작되었다. 허리가 구부정하고 전철에서 전도하는 그의 모습은 한 마디로 광인(狂人)과 같았다. 우선 맨발이 그랬고, 손수 만든 전도지를 손에 들고, 또 목에 걸고 다니며 소리를 치는 모습이 그랬다. “우리 하나님은 자비로우십니다.” “미스 코리아 유관순!” “미스터 코리아 안중근!” “Why two Korea?” 이 외침은 유관순과 안중근 같은 사람이 참 한국인이며, 그런 이들만 있다면 왜 한국이 남북으로 분단이 되었겠느냐는 의미였다.
김우현PD가 최목사님의 거처가 있다는 한남동으로 무작정 찾아갔다. 매우 추운 날임에도 불구하고 그날도 전도를 하기 위해 집을 나선 그를 길에서 만나 댁을 방문했는데 생각보다는 번듯한 집이었다. 동생이 빌려준 집이었다. 그런데 김우현PD는 대화를 하면서 조금씩 목사님에 대하여 알수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최목사님은 일제시대에 일본 와세다 대학교를 나오셨는데, 유학 중에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셨다. 당시 일본의 유명한 기독교 지도자였던 하천풍언과 내촌감삼의 영향을 받으셨다고 한다. 이 후 일본군 징용을 피해 만주로 가서 광복군으로 활동을 하셨고, 해방 후 귀국하신 목사님은 하나님의 사랑과 복음을 전파하는데 헌신하셨다. 부유한 집안의 아들로 태어나 김포공항 근처에 수 십 만평의 땅을 소유하셨다고 한다.
1949년 김포에서 개척교회를 시작하셨는데 교회 이름이 그리스도 교회였다. 6.25 직후 길에 떠도는 노숙자들과 거지들을 집으로 데려와 거두셨고, 국가나 단체의 보조 없이 고아들도 많이 돌보셨다. 부모로부터 유산으로 받은 땅은 많은 실향민과 가난한 이들에게 집을 지으라고 나누어 주셨다. 남은 땅이 3천 평이었는데 그마저도 땅은 사람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라고 믿었기에 등기를 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 사실을 안 어떤 사람이 그 땅을 자기 앞으로 등기를 하는 바람에 어이없게 빼앗겨 버렸지만 힘든 표정 한번 짓지 않았다. 수백 명이나 되는 고아들을 데리고 서른 번도 넘게 이사를 하면서도 원망불평하지 않고 찬양을 부르셨다.  
1970년 초에 목사님이 중병에 걸려 죽을 위험에 처했다가 하나님의 기적으로 회복되는 신비한 체험을 하셨는데 이때가 50세 무렵이었다. 큰 체험을 하신 목사님은 남북통일이 되기 전에는 절대로 신발을 신지 않겠다고 결심을 하셨다. 이때부터 목회는 접고 문서선교와 노방전도에 전념을 하셨다.

 

반항하던 아들, 아버지의 거룩한 삶을 증언하다
다음은 장남 최바울 목사님의 간증 내용이다. “아버지는 내일 일은 절대로 걱정하지 않는 분이셨어요. 당장 내일 먹을 쌀이 없어도 전부 나눠주시고, 새 옷을 사다드리면 밖에 나갔다 들어오실 때 다 떨어진 헌옷으로 바꿔 입고 들어오시고, 심지어 ‘바울아 너는 따뜻한 옷이 또 있지?’라고 하시며 제 잠바들도 모두 나누어 주셨어요.
한번은 다음날 아침에 먹을 쌀을 전부 나눠줘 어머니께서 발을 동동 구르고 계시는데, 지방에 사는 한분의 성도가 첫 수확한 쌀이라며 쌀을 가지고 새벽차로 올라와 문을 두드린 적도 있었어요. 정말 놀라운 체험이었지요. 이런 체험에도 불구하고 제 옷이 하나 둘 없어질 때마다 속이 많이 상한 저는 어린 마음에 동생들을 모아놓고 ‘아버지가 예수를 믿어서 우리가 이렇게 된 것이니 우린 절대로 예수 믿지 말자’라고 했던 때도 있었어요. 김포 일대의 땅이 대부분 아버지 소유였고 자동차가 다섯 대나 있었는데 모두 나눠주고 개천 다리 밑에서 살다가 쫓겨나는 일이 비일비재해서 어린 마음에 상처가 컸었던 것 같아요.”
독립운동을 하셨던 최 목사님은 도장 하나만 찍으면 증손자까지 4대가 학비 지원을 받으며 경제적으로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그럼에도 그런 노력을 하지 않으시는 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어 아들은 원망을 했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서류를 위조해서라도 받아내려는 독립유공자 자격을, 나라가 반쪽인데 그 돈을 받을 수 없다”며 끝까지 도장을 찍지 않으셨다. 그런데 동생들을 모아놓고 ‘예수 믿지 말자’던 사춘기 시절의 상처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하나님께서 회복시켜주시고 인도해주심을 체험하는 일들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모든 재산을 다 나눠주고 이곳저곳으로 쫓겨 다니다가 생계를 위해 어머니와 미술학원을 열기로 한 때였다.
“미술 학원 첫 입학식 때였는데 사회를 맡았던 저에게 기도를 하라고 하시는 거예요. 교회도 아니고 기독교학원도 아니라 망설이고 있는데, 그 순간 하나님께서 ‘바울아! 너는 그것도 못하니?’라는 감동을 주시더라고요. 그래서 큰소리로 ‘하나님께 기도드림으로 미술학원 입학식을 시작하겠습니다.’라고 외치고 기도를 드렸죠. 기도 후에 보니 4명이 바로 그 자리를 떠나버렸어요. 그런데 감사하게도 다음날 하나님께서 8명을 더 채워주셨어요.”


 
가장 아름다운 발
목사님은 종이 한 장이라도 아끼기 위해 신문지 위에 자신이 직접 문구를 썼다. 허술하고 볼품도 없고 조금은 우스꽝스러웠지만 깊은 의미들이 담긴 전단지였다. 그리고 자신이 사는 동네의 골목 어귀에 붙이고 지하철에 있는 사람들에게 나눠주면서 30년 동안 맨발로 다녔다. 우리는 성경 가운데서도 최춘선 목사님과 비슷한 선지자를 발견하게 된다. 이사야 선지자가 3년 동안 벗은 몸과 벗은 발로 다니도록 하나님께서 명하셨다(사20:2-3). 애굽과 구스에 대하여 예표와 기적이 되게 하려 하심이었다. 또한 이사야 선지자의 벗은 모습을 통해 애굽과 구스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생생한 경고의 메시지가 담겨 있었다.
같은 차원에서 최춘선 목사님이 30년 동안이나 벗은 발과 광인 같은 모습으로 전도하도록 하신 하나님의 중대한 교훈과 메시지를 우리는 발견해야 할 것이다. 최목사님은 선지자 이사야처럼 사람들로부터 철저히 외면당하고 조롱당하면서도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한 이 시대의 이사야 선지자이다.
양적으로는 많은 부흥을 했지만 언제부터인가 모르게 세속화되어 복음의 본질을 잃어버린 한국교회. 지나치게 물질주의와 성공주의에 치우쳐 신본주의보다는 인본주의 사상을 따르며, 선과 악의 모호한 경계에서 영적지도자들이 표류하는 배처럼 갈팡질팡하고 있다. 어쩜 눈에 보이는 대로 평가하고, 세상이 가치 기준이 된 이 시대가 하나님 보시기에 광인처럼 비쳐지지는 않을지 심각하게 되짚어 보아야 한다.      
모든 소유를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지극히 가난하게 살면서 오직 복음 전파에만 전념하신 목사님. 앉으면 성경 이외의 말을 하지 않으셨고, 오직 예배를 드리는 일에만 몰두하신 목사님. 어린 아이들에게도 언제나 존댓말을 사용하신 목사님. 마지막 순간까지도 복음의 발걸음을 멈추지 않으셨던 최목사님은 2001년 9월 8일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병약한 몸을 일으켜 전도하러 나가셨다가 전철에 앉은 자세로 소천 하셨다. 그해 연세가 80세였다.
장남 최바울 목사님이 연락을 받고 시신이 안치된 곳으로 달려갔을 때 그 발을 보고 아버지임을 금방 확인할 수 있었다고 한다. 30년의 긴 세월동안 추우나 더우나 맨발로 전도한 맨발의 성자, 최춘선 목사님. “얼굴은 아버지의 얼굴은 닮았지만 발은 닮으려면 아직 멀었어요.”라며 눈시울 붉히던 최바울 목사님의 눈과 그 말이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처럼 느껴진다. 생전에 독립유공자 혜택을 스스로 포기하셨던 목사님은 소천하신 후에나마 대전 현충원 제2애국지사 묘역에 묻히셨다.
나의 게으른 발을 재촉하며 주님께 기도를 드려본다. “하나님 아버지! 자기를 부인하면서 십자가를 지고 좁은 길을 걸으며, 주님의 걸음걸음을 좇았던 최춘선 목사님의 발을 저희도 본받게 하여 주옵소서.”  


요셉 객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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