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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찌무라간조3 행복은 행복을 단념해야 얻을 수 있다
빛과 사람들  
작성자 강요셉
작성일 2020-06-02 (화) 16:01
ㆍ조회: 20      
우찌무라간조3 행복은 행복을 단념해야 얻을 수 있다
문화충격에 빠지다
기대에 부풀어 유학길에 올랐는데, 미국에서조차 돈이 힘이라는 사실을 여러 경험을 통해서 깨닫고는 마음이 씁쓸했다.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하자마자 기독교 문명에 대한 믿음에 큰 실망을 안겨주는 사건과 맞닥뜨렸다. 일행 중 한 사람이 5달러짜리 금화가 들어 있는 지갑을 소매치기 당하였다. 그보다 더 큰 문화적 충격은 시카고에서였다. 기차 식당 칸에서 식사 전에 기도를 하는 모습을 본 흑인 웨이터들이 와서 말을 건넸다. “당신들 대단하군!” 그들에게 신앙에 대해 말하자 자신들은 감리교 교인이라고 말했다. 또 한 사람이 왔는데 감리교회 집사였다. 웨이터는 매우 친절하게 그의 일행이 기차를 떠날 때까지 두 시간 내내 시중을 들어주었고, 가방을 메고 표를 검사하는 곳까지 따라 왔다. 그런데 그들 일행이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 감사하며 가방을 받으려고 손을 내밀자 가방을 주지 않고 자신의 검은 손을 쑥 내밀었다. “얼마라도 좀 주쇼.” 기차는 떠나기 직전이었고 웨이터와 실랑이를 벌일 시간이 없었기에 각자 50센트짜리 하나씩을 그의 손에 쥐어 주었다. 가방을 돌려받은 후에 겨우 서둘러 기차에 올라탈 수 있었다. 기차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섬김까지도 물물교환을 하는 이 나라에 대해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한동안 망연자실했다.
이런 일이 있은 지 1년 후였다. 폴리버(Fall River) 호를 타고 여행을 하던 중 새 실크 우산을 도둑맞는 또 한 번의 사건을 겪었다. 호화로운 장식과 정교한 음악에 빠져 순진한 마음으로 한눈을 파는 사이에 도둑을 맞고서는 번번이 물건을 잃어버려 도둑의 소굴에 있는 것처럼 불안에 떨어야만 했다. 
그런데 이곳에서 기독교인만큼 열쇠를 많이 사용하는 일을 본 적이 없었기에 또 한 번 놀랐다. 당시 일본의 고향에서는 열쇠를 거의 사용하지 않았고, 집은 거의 대부분 모든 사람에게 개방되어 있었다. 하인이나 이웃이 자신들의 소유에 손을 댈 것이라는 걱정은 전혀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곳은 전혀 달랐다. 온갖 문과 창문 등 모든 것을 잠갔고, 가정은 이 시대를 지배하는 탐욕의 정신에 잘 맞도록 개조된 봉건주의 성(城)의 축소판처럼 보였다. 시멘트 지하실과 돌을 깎아 만든 저장실이 필요하고, 그것을 불독과 경찰들이 지켜야 하는 문명을 기독교적이라고 할 수 있는지 정직한 크리스천이었던 그들은 심각한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심한 인종편견만큼 기독교 국가를 오히려 이교도 국가처럼 보이게 한 일은 없었다. 흑인 노예 해방의 선언이 있은 지 30여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흑인들과는 적당히 거리를 유지함으로써 야벳 족속의 허영심을 고집하고 있었다. 친구의 초대로 방문한 적이 있는 델라웨어 주에서는 흑인들만을 위한 지역이 도시에 별도로 정해져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가 “이것은 매우 이교도적인 처사로 보입니다.”라고 말했더니 그 친구는 기독교인이 되어서 깜둥이와 같은 구역에 사느니 차라리 이교도가 되어 따로 살겠다고 강력히 말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인디언과 아프리카인에 대해 강한 반감을 가진 미국인들이 기독교를 전하기 위해 다른 선교지에 사람들을 왜 보내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하루는 귀한 일생
그는 외국을 여행하면서 얻은 유익에 대하여 세 가지로 말하였다. 첫째, 낯선 땅에서 묵고 있는 사람은 외로움을 피할 수 없다. 아무리 그 나라에서 좋은 우정을 쌓고 그들의 언어를 구사한다고 해도 여전히 이방인이기 때문이다. 둘째, 조국을 떠난 사람은 더 이상 개인이 아니다. 그의 말과 행동은 자신의 것만이 아닌 자신의 민족과 종족의 것으로 평가받는다. 따라서 낯선 나라에서 사는 모든 사람은 자기 나라의 외교관이라고 할 수 있다. 셋째, 자신에게 적합하지 않은 환경 속에서 사는 사람이 겪는 향수병이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려고 애쓰지만 고향의 달콤한 기억으로 인해 우울함이 찾아와 아픈 가슴을 녹여 눈물을 만들고, 우리를 골짜기와 숲으로 몰아 깊은 생각에 빠지게 하고, 몸부림치며 기도하게 한다. 그러므로 이런 경험들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과의 교제로 이끌어 조금씩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화되는 과정을 겪게 되는 것이다. 모세가 자기 백성의 구원자로 나타나기 전에 미디안 땅으로 가게 된 것(출2:15), 엘리야가 브엘세바로 도망간 것(왕상19:3)이 낯선 나라에서의 외로운 영혼으로 하나님을 찾는 사람들에게 한없는 위로가 된다. 
“호렙의 동굴에 홀로 있던 엘리야처럼 광야의 돌 위에 앉아 보라. 그러면 광야로부터 부드러운 음성이, 불안해하는 자녀를 위로하는 아버지처럼, 비통함과 분노와 두려움을 내쫓으며 들려온다. 사람은 멀리 있으나, 하나님은 가까이 계시도다!”
사도 바울이 아라비아로 가서 하나님의 아들을 직접 체험하며 내적훈련의 기간을 가진 후에 이방인의 사도로서 크게 쓰임을 받은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아라비아에서 돌아온 후 세상을 향해 이렇게 선포했다.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내가 전한 복음이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이 아니라 이는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갈1:11-12). 그 역시도 먼 이국 땅에서 내면을 더 깊이 성찰하며, 더 넓은 세계관을 갖게 되었고, 하나님이 가까이 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가 미국에 도착한지 얼마 안 되어 펜실베니아의 한 의사와 우연히 만나게 되었다. 그는 매우 실천적인 박애주의자였다. 그는 내촌의 성격을 파악한 후 자신의 보조원 중의 한 사람으로 두었다. 일본 정부의 관리에서 미국 정신병원의 간호보조원으로의 이동은 무척이나 갑작스런 일이었다. 그러나 이로 인해 주님께서 완전히 새로운 인생의 관점을 가르쳐주셨다. 내촌이 병원에 들어간 것은 마틴 루터가 에르푸르트 수도원에 들어간 것에 비유할 만한 일이었다. 가난하였지만 생계를 위함보다는 자신의 육신을 복종시키고 내적으로 정화되며 자신을 훈련시켜 천국을 유업으로 받기 위해 그 일을 하게 되었다고 고백하였다. 또한 수많은 아픈 경험을 통해 이기주의는 어떠한 형태로 나타나든 모두 악마의 것이며 죄라는 사실을 배우게 되었다. 자신을 완전히 희생하고 전적으로 자기를 잊어버려야 하는 박애주의의 요구를 따르려고 노력하면서도 자신의 속에 있던 선천적인 이기심이 각양 두려운 죄악상으로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또한 하루하루 주님 안에서 충실하게 살아가기를 원한 그는 “하루는 귀한 일생”(一日一生)이라며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하루는 값진 일생이다. 이를 허비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유효하게 하루를 보내는 길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루의 삶을 시작하는 데 있다. 하루의 성패는 아침의 마음먹기 여하에 달려 있다. 아침에 일어나서 맨 처음에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루를 시작하며, 그날의 싸움에서 승리할 수밖에 없다. 비록 패배한 것처럼 보이더라도 승리임은 의심할 바 없다. 그리하여 이런 생애를 한평생 계속하면 그 일생은 성공으로 끝나게 되어 있다.”
그리고 진정한 행복의 의미를 우리에게 가르쳐주었다.
“행복은 어떻게 오는가? 행복은 행복을 단념하면 온다. 고통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고통이란 행복을 추구하다가 얻지 못하는 것이다. 혹은 행복이라고 생각한 것을 상실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만일 행복을 구하지 않는다면 고통은 없다. 행복은 곧 고통의 원인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인생의 목적은 행복을 얻는데 있다.' 당치도 않은 잘못이다. 사람은 돼지가 아니다. 돼지와 다르다. 그의 목적은 영성을 기르는데 있다. 인내,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 이러한 영성을 얻는데 있다. 이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행복의 정반대되는 것을 얻고자 하는 데 있다. 때문에 불행은 오히려 행복인 것이다. 행복은 행복을 단념해야 얻을 수 있다. 그러므로 행복은 지금 바로 이 자리에서 얻을 수 있다. 행복을 단념하고 나를 포기하면 얻을 수 있다. 무엇 때문에 번민하는가?”

강요셉 객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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