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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기철9] 따뜻한 숭늉 한 그릇 마시고 싶소
빛과 사람들  
작성자 편집부
작성일 2019-07-02 (화) 14:51
ㆍ조회: 28      
[주기철9] 따뜻한 숭늉 한 그릇 마시고 싶소
 다만 한걸음씩

평양경찰서에서 주목사님 일행과 함께 수감되었던 안이숙 자매는 풀려나오는 길로 주목사님 가족에게 달려와, 감옥 속에서도 역사하시는 주님의 신비스러운 일들을 이야기했다. 전쟁 전에는 가축 사료나 퇴비로 쓰던 콩깻묵으로 지은 밥을 먹고 감방에서 시체 썩는 냄새로 가득 찰 정도로 수없는 사람들이 죽어나갔는데, 그 끔찍한 사건 속에서 크리스천들만은 무사했단다. 그리고 주목사님께서 안자매가 있는 감방 건너편에서 손으로 글씨를 써서 여러 가지 도움을 주셨다 한다.
“우리는 그저 한 발자국씩만 걸읍시다. 뛰려고도 날려고도 말고, 그날 닥쳐오는 일을 한 발자국씩만 다지면서 가면 갈 수 있겠지요. 죽는 것이 목표이면 그 죽음이 언제 오든지 언제나 죽음의 선만 목표로 하면, 그 나머지 일은 주님께 맡길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처음에는 장기간의 고난을 어떻게 견딜까 근심하면서 장기간의 고난을 견딜 수 있게 해주십사 기도했는데, 고난의 기나긴 시간도 주님의 주권 안에 있으니 그것은 우리들의 시간이 아닙니다. 그저 그날, 나에게 오는 고문의 분량을 한걸음씩 받아들이는 것뿐, 주님이 그 걸음을 함께하시니 우리는 그냥 따라가는 것이지요. 다음에 닥쳐올 고통을 근심하거나 무서워할 일도 없고 어제 당한 고난을 따지고 셈할 일도 없이 오늘, 그저 지금, 내게 닥치는 것을 묵묵하게 받아들이다 보면 결말이 올 것입니다. 그것이 죽음이라 하더라도 흔쾌하게 기쁘게 감사하게 받을 수 있는 훈련을 주님은 이렇게 시키고 계신 거예요. 그 아니 신비스럽습니까.”
 
 
광조가 보고 싶소
1944년 2월, 목사님과의 면회는 꺼져 가는 등불의 심지가 얼마나 남았는가를 확인하기 위한 절차 같았다. 이미 그의 육신은 허물어지고 있었지만 여전한 그 미소로 면회한 후 뜻밖의 말씀을 하셨다. “여보, 광조가 보고 싶구료. 이제 곧 소학교 졸업이겠구려.” “목사님, 면회가 안 된다는 것을 아시면서….” “그래서 더 보고 싶구려, 미안하오.” “그러면 다음 3월 면회 때, 광조를 데리고 올게요. 제 차례가 되어 저 면회실 문이 열릴 때 그 앞에 바짝 세워 놓고 문을 천천히 닫을 테니까 그때 보시도록 하세요.”
3월 31일 광조는 잔뜩 긴장하고 따라나섰다. 아침 9시에 집을 떠나 오후 4시가 되어서야 이름이 호명되었다. 면회실 철문이 열리자 재빠르게 그 틈을 이용해 안으로 들어갔다. 철창 앞에 푸른 죄수복을 입은 목사님이 머리를 빡빡 깍은 모습으로 서 계셨다. 그리고 그 미소, 어느 때보다도 그 미소는 온화하고 부드러웠다. 그때 안에서 “뭐야? 밖에서 문 닫아!” 외치자 간수가 달려들어 철문을 깨어져라 닫았다. “보셨어요?” 눈물이 글썽해진 눈으로 웃음을 머금고 말씀하셨다. “많이 컸어요… 고맙소. 당신이 많이 고생스럽겠소.”
주목사님은 그날 이후 간수에게 부탁하여 종이와 연필을 구하여 집으로 유서를 썼다. 뭉그러진 손으로 힘들게 쓴 흐트러진 글씨 속에는 어머님과 자식에 대한 애끓는 사랑이 담겨 있었다. 유서를 받은 지 며칠 후 어머님께서 쇠진한 모습으로 “지난밤에 우리 주목사가 내 앞에 와서 꿇어 엎드려 큰절을 하더라.” 그러시면서 또 우셨다. 어떻게 해야 하나 서성거리는데 4월 19일 저녁 참에, 형무소에서 사람이 찾아왔다. “주기철. 위독하여 병감에 수용되어 있으니, 긴급 면회 바람.”
 
 
나를 돌박산에 묻어 주오
날이 밝기도 전에 형무소로 달려갔다. 간수는 면회실이 아닌 소장실로 오사모를 안내했다. “부인, 부군께서 너무 위중한데 병원으로 모시고 가십시오. 수속을 밟아 드리겠습니다.”이들은 열흘 전에 최권능 목사님을 이렇게 밀어냈었다. 최목사님은 옥중에서 소천하시겠다는 뜻을 굽히지 않으셨지만 강제로 모시고 나가서 닷새만인 4월 15일 병원에서 소천하시지 않았는가. 이들은 목사님들이 옥중에서 순교하셨다는 소문을 두려워하고 있었던 것이다. “소장님, 우선 우리 목사님을 만나보아야겠습니다. 그후에 결정하도록 하지요.”
목사님은 두 간수에게 들려오셨다. 서 있을 힘도 잃은 듯 간수들에게 몸을 의탁한 목사님은 앞이 보이지 않는 듯 초점을 맞추지 못했다. 허공을 더듬다가 지어미를 알아본 듯했다. “목사님, 승리하셔야 합니다. 이제 다 오셨습니다. 끝까지 승리하셔야 합니다.” 그것은 내 목소리가 아니었다. 내 귀에도 생소한 엄엄한 명령이었다. 목사님의 눈이 잠깐 빛났다. “목사님, 주님께서 월계관을 들고 계신 것 보이시지요? 눈을 들고 바라보세요. 주님의 얼굴을 바로 보세요. 목사님!”
목사님이 타 붙은 입술을 열었다. “나는 머지않아 주님 앞으로 갈 것이오. 아! 어머님이 보고 싶소. 불쌍한 어머님을 내 대신 잘 모셔 주시오.” 한마디 한마디가 목사님의 숨을 몰고 있었다. “어린 자식들을 잘 부탁합니다. 나는 하나님 앞에 가서 조선 교회를 위하여 기도하겠소. 교회에게 내 말을 전해 주시오.” 목사님은 아직도 하고 싶은 말이 많은 듯 기력을 가다듬어 해야 할 말을 찾고 있었다. “여보, 나를 웅천으로 가져가지 말고 평양 돌박산에 묻어주시오.” 그 말을 다 마치지도 못하고 목사님은 쓰러졌고 간수들은 황급하게 목사님의 몸을 양편에서 붙들었다. 끌려가시던 목사님이 뒤돌아보며 “여보, 따뜻한 숭늉 한 그릇 마시고 싶소.” 하시며 진한 여운을 남기고 가셨다.
오사모는 그 밤을 혼자 엎드려 울었다. 남편을 그 차디찬 콘크리트 바닥에서 운명하게 만든 무서운 여자, 하지만 이것도 진정 자신의 의지가 아니었다. 하나님만이 아실 일. 눈물로 바닥을 적시면서 밤을 새우고 날이 밝을 무렵, 이제는 이 땅에서 주기철 목사의 고통이 끝났다는 것을 알았다. 남편에게 입혀 드릴 새 옷을 챙겨들고 곧장 형무소로 달려갔다. 일본이 무너지기 1년 4개월 전이었다. “목사님의 유체를 모시고 나가겠습니다. 수속해 주십시오.” 조용히 일어나 과장에게 말하자 과장은 주일 아침에 수속하겠다고 한다. 오사모는 단호하게 “내일은 주일입니다. 우리 크리스천들은 일요일에 시신을 모시고 다니지 않습니다. 오늘 모시겠습니다.” 할 말을 마치고 오사모는 다시 의자에 앉았다. 과장이 이리저리 뛰어다니다가 돌아왔다. “오늘 오후 여섯 시. 북문으로 오십시오.” 밖에서 기다리던 백인숙 전도사와 여집사들은 사태를 짐작하고 달려와 함께 쓸어안고 흐느꼈다. “우리 목사님이 승리하셨습니다. 승리하셨습니다. 주님이 지금 기뻐하십니다. 목사님의 승리를 기뻐하십니다.”
 
 
세 개의 면류관
“사모님, 어제 목사님께서 운명하시던 순간 '내 영혼의 하나님이시여 나를 붙들어 주옵소서'하며 마지막 외치시던 음성이 어찌나 우렁찼던지 주변에 있던 사람들 모두가 무척 놀랐습니다. 목사님께서는 승리하셨습니다.”고 한 간수가 말해주었다.
목사님의 관은 사랑하는 교인들의 눈물에 젖어 방안으로 들어갔다. 그에게 맡겨진 고난을 모두 이기고 고요한 모습으로 목사님은 관속에 누워 계셨다. 관 뚜껑을 여는 것을 본 어머님은 관속으로 들어가시려고 했다. “내 목사야 내 목사야, 눈 한번만 뜨고 어미를 보아 다오. 한번만 만나보고 떠날 것이지… 어찌 이렇게 무정하게 가 버렸노? 내 아들 내 목사야!” 할머니 뒤에서 벌벌 떨며 흐느끼고 있는 광조도 아버지의 시신을 붙잡고 서럽게 울었다. 방안에 둘러 있던 사람들도 문밖에서 기다리던 사람들도 다시금 일제히 통곡을 터뜨렸다.
집을 떠나 떠돌아다니던 영진, 영해는 발인 예배 직전에 허겁지겁 당도했다. 헐벗고 굶주리며 가족과 헤어져 떠돌이로 지내면서도 한가닥 희망을 잃지 않았던 그들. 비록 감옥에 갇혀 계셨지만 아버지가 살아계시기에 고난이 끝나 가족이 한데 모일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있었다. “아버지! 아버지!” 두 형제는 피가 묻어 날것만 같은 부르짖음으로 아버지를 찾았다. 관 뚜껑이 열리자 영진과 영해는 관속으로 뛰어들려고 했다. 할머니와 광조가 달려들어 한데 어우러졌다. 오사모도 그때까지 견디고 참았던 슬픔을 폭발하고 말았다.
5일장, 장례일인 화요일 아침에는 눈부시도록 화창한 햇살이 쏟아졌다. 평양 고등보통학교 정문 앞 광장이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경찰관들이 몰려들었으나 그 수많은 사람들 기세에 눌렸는지 아무런 행동개시도 하지 못했다. 기자묘 앞을 지나서 대성산 공동묘지, 목사님이 그렇게도 그리워하시던 돌박산에 이르렀다.
어머니를 사랑하는 효자요, 아이들의 훌륭한 아버지요, 애정을 가진 남편이요, 연약한 육신을 입은 인간 주기철. 그러나 그 인간의 애절함과 연약함을 지고 좌로나 우로 치우치지 않고 십자가만 바라보며 묵묵히 한 걸음씩 주님을 따라간 하나님의 종. 오직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그 명령에 겸손히 순종한 충성스러운 종이었다. 그의 순교는 산정현교회와 오사모와 가족들이 함께 한 고난 후의 영광이라 할 수 있다. (끝)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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