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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번연2] 말씀 안에서 영적싸움을 하다
빛과 사람들  
작성자 편집부
작성일 2019-10-04 (금) 13:45
ㆍ조회: 8      
[존번연2] 말씀 안에서 영적싸움을 하다
 하나님의 말씀은 양심을 점점 더 밝게 비춤과 동시에 큰 고통이었다. 하지만 고통은 번연이 더욱 안전한 반석 위에 서도록 몸부림치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선한 양심의 싸움
교회에서 종치는 일을 하였는데, 양심이 점점 민감해지면서 그 일을 하는 것조차도 허영심이 아닌지 염려가 되었다. 자신의 행실을 고치지 않고서는 오히려 외식적인 신앙으로 종을 치다가 벌을 받아 종이 머리에 떨어지리라는 두려움이 생겼다. 이로 인해 더 이상 종을 칠 수가 없었다. 이전에 즐기던 춤을 포기하는 데는 꼬박 1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당시 영국에는 음란과 쾌락과 온갖 타락한 행실을 자행하며 스스로 호언장담하는 ‘랜터즈’라는 신앙의 무리가 있었다. 혹여나 번연 자신도 랜터즈의 길에 들어서지 아니할까 늘 경계하였는데, 이는 그의 신앙의 경계석이 되었다. 오늘날이나 당시에나 몇몇 이들은 양심의 가책을 느끼면 눈물을 줄줄 흘리며 기도한다. 하지만 여전히 죄의 습관들은 버리지 못한 채, 고통스런 상황이 호전의 기미를 보이면 언제 그랬냐는 듯 너무 쉽게 옛 생활로 돌아가 버린다. 또한 자신이 죄에서 어떻게 벗어났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다. 그러기에 그들은 고통이 지나면 되레 더 악해지고 눈멀고 더 사악해지는 경우를 본다. 
존 번연은 이점 때문에 더욱 경계를 바짝 세웠다. 하지만 자신이 주안에서 발견되기엔 너무나 거리가 먼 죄인이며, 흡사 랜터즈들과 같은 사람이라고 여겨졌다. 그러기에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주님이 허락하신 말씀을 간절히 붙들고자 하였다. 그러던 중 로마서 9장 16절이 눈에 들어왔다. “그러므로 원하는 자에 의해서도 아니요, 달리는 자에 의해서도 아니며 오직 자비를 베푸시는 하나님에 의해서니라.” 이 말씀이 오히려 그의 마음속에 의문을 남겼다. 아무리 고민하고 애쓸지라도 자신이 하나님 백성이 되는 데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던 것이었다. 원수 마귀는 말씀을 가지고 번연이 택함 받지 못했을지도 모른다고 괴롭혔다.
다시 시편 34:4이 그를 사로잡았다. “내가 주를 찾았더니 그가 나를 들으시고 내 모든 두려움에서 나를 건지셨도다.” 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 전체를 통독하면서 주를 찾고도 버림받은 사람이 하나라도 있는지 직접 확인하여 보리라는 생각이 들어, 실로 잃어버린 드라크마를 찾는 심정으로 찾다가 발견한 말씀이었다. 성경 속에는 수많은 이들이 구원받은 이야기가 끊이지 않았다. 번연의 마음에 하나님께 나아가고자 하는 소망이 강하게 일어났다. 그의 얼굴에 빛이 나기 시작했고, 두 손을 들고 말씀을 주신 하나님을 송축하였다.

 
불신과의 싸움
번연의 싸움은 불신과의 싸움이었다. 많은 의심이 산 넘어 산처럼 그를 공격해왔다. 그때마다 번연은 절박한 심정으로 말씀 속에서 진리를 찾고자 몸부림쳤으며 하나님께선 그에게 굳건한 진리로 무장시켜주셨다.
한 번은 하나님의 말씀 전체에 관한 의심이 들었다. 하나님과 그리스도는 참으로 존재하는가? 성경의 모든 내용은 교묘하게 꾸며낸 이야기가 아닌가? 기독교에서 성경을 사용하듯이 다른 종교에서도 자신들의 종교가 진리임을 증명하는 경전들을 갖고 있지 않은가? 이 모든 의문이 신성모독처럼 생각되면서도 끝없이 솟아나왔다.
이에 대해 반론을 펴고 사도 바울의 입을 빌려 반박하고자 애를 썼다. 그러나 도리어 “비록 우리가 바울과 그의 말에 그토록 많은 중요성을 둔다 해도, 그 역시나 안개에 가려진 교활한 남자이기에 그가 강력한 미혹으로 다른 이들을 속여 먹는 일에 몰두 했을 뿐만 아니라, 고통과 고난을 사서 얻어먹기까지 동료들을 망치고 파멸시키려고 했을 수도 있지 않은가?”라는 반문이 고개를 들었다.
존 번연은 마귀와의 싸움에서 스스로는 수적으로도 힘으로도 모두 열세라는 것을 뼈저리게 경험하였다. 이렇게 시험을 당하는 동안 번연의 마음속에서는 돌연 저주와 욕설을 퍼붓거나 하나님과 예수님 그리고 성경에 대하여 심한 말을 하려는 충동이 생겼다. 이에 자신이 마귀에게 사로잡혔다고 여겨졌다. 불신 때문에 자기 안에 사랑이나 감사, 평안 등 어떠한 은혜로운 성품도 존재하지 않음을 깨달았다. 번연은 이 일로 아주 깊은 절망의 심연으로 가라앉게 되었다. 이와 같은 현상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이들 가운데 찾아볼 수 없는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이사야 57:20-21의 말씀이 그를 다시 사로잡아 왔다. “그러나 악인은 요동하는 바다와 같으니 안정하지 못할 때 물결이 진흙과 오물을 솟구쳐 내게 하는 바다 같도다. 악인에게는 화평이 없다고 나의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느니라.”
이 말씀은 그의 영혼을 갈가리 찢어놓았다. 그리고 그의 마음은 극도로 완악해졌다. 이러한 시험이 1년 동안 지속되었기에 그 고통을 겪으면서 그리스도인의 성무에 임해야 했다. 이 시기에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였다. 경청하다보면 불결함과 모독과 절망감이 지금이 바로 기회라는 듯 번연을 포로로 만들기 일쑤였다. 의심을 피하려 하면 어느새 엉뚱한 것에 정신이 팔려서 방금 전까지 읽은 게 무슨 말씀이었는지 기억하지도 못했다. 또 그것을 숙고해서 기억 속에 남겨두는 일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기도 생활에도 큰 곤란이 있었다. 원수 마귀는 기도 시간 내내 “이제 그만해, 빨리 좀 하란 말이야. 이 정도면 됐으니까 더 이상 꾸물거리지 말고 일어나란 말이야.” 끊임없이 속삭이며 사악한 생각으로 이끌고 갔다. 그 뒤 “네가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마4:9)이란 말씀으로 공격하였다. 하나님께 마음을 고정시키고자 하였으나 정작 기도가 끝나고 나면, 마음은 이미 은혜 저편의 메마른 덤불처럼 뒹굴고 있었다. 그러나 마귀의 참소에도 불구하고 번연은 포기할 수 없었다. 하나님의 자비를 얻기 위하여 씨름하며 믿음을 저버리지 않고 싸움을 계속해 나갔다.

 
확신의 말씀
하나님께서 존 번연에게 계속해서 주신 은혜의 말씀들은 다음과 같다.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떼어 놓을 수 없으리라”(롬8:38,39). “내 아버지여, 아버지께서는 나의 젊을 때부터 인도자가 되었나이다”(렘3:4). “하나님께서 죄를 알지도 못하는 그를 우리를 위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5:21). “그렇다면 이런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신다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롬8:31). “이는 내가 살고 너희도 살겠음이라”(요14:19).
그러나 위로의 말씀들은 마치 베드로에게 임하였던 보자기처럼 갑자기 쑤욱 하늘로 다시 올라가 버리는 것이었다. 그래도 주님께서는 더욱 충만하고 은혜롭게 계시하여 주셔서 양심을 누르던 죄책감과 그것의 더러움으로부터 번연을 구원해주셨다.
어느 날 마음의 사악함과 불경스러움에 관해 이리저리 생각하고 자신 안에 도사리고 있는 하나님을 향한 적개심을 숙고하며 시골 길을 걷고 있을 때였다. 골로새서 1장 20절의 말씀이 떠올랐다. “그의 십자가의 보혈을 통하여 화평을 이루고.” 번연은 자신이 예수님의 보혈을 통해 하나님과 더불어 친구가 된다는 것을 거듭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한 번은 집안 난롯가에 앉아 자신의 비참함을 골똘히 생각하고 있을 때 주님께서 또 하나의 소중한 말씀을 주셨다. “자녀들이 피와 살에 참여하는 자인 것같이 그 역시 같은 모양으로 동일한 것을 참여하신 것은 자신의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가진 자, 곧 마귀를 멸망시키시며 또 죽음을 두려워하므로 평생을 노예로 속박되어 있는 자들을 놓아주시려 함이니라”(히2:14,15).
영혼을 꿰뚫고 들어오는 예리한 주님의 말씀이 번연을 강하게 압도했다. 곧 비탄과 근심이 사라지고 확고한 기쁨과 평안이 임했다. 번연은 누구보다도 말씀에 민감하게 반응했고, 말씀에 의해 자신을 움직이려 했던 사람이었다. “성경은 당신을 죄에서 멀어지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죄가 당신을 성경에서 멀어지게 할 것이다.” (계속)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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