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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성장론 (48)
빛과 진리  
작성자 자료부
작성일 2020-02-04 (화) 12:01
분 류 성경핵심진리
ㆍ조회: 58      
영적성장론 (48)
 ⑨ 할례산과 가나안 땅 정복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십년 동안의 광야여정을 마치고 여호수아의 영도(領導)를 받으며 요단강을 건넌 직후, 가나안 땅의 입구에 있는 길갈에 도착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길갈 즉 할례산에서 여호수아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이 할례(割禮)를 받도록 하셨습니다.
여기에서 할례란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 남자들의 양피를 베어내는 것을 가리켜 말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40년 광야의 길을 통과할 때는 할례를 받지 못하였고, 가나안 땅의 입구에 있는 길갈 즉 할례산에서 모든 백성들이 한꺼번에 할례를 받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길갈에서 할례를 받게 된 것은 천국의 모형이라고 할 수 있는 가나안 땅이 할례받은 백성들만 들어가서 사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할례를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도록 의롭다하심을 받은 성도들의 모형입니다.
여호수아 5장 8-9절을 보면 “온 백성에게 할례 행하기를 필하매 백성이 진중 각 처소에 처하여 낫기를 기다릴 때에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오늘날 애굽의 수치를 너희에게서 굴러가게 하였다 하셨으므로 그곳 이름을 오늘까지 길갈이라 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 가운데 하나님께서는 할례산에서 할례를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애굽의 수치를 너희에게서 굴러가게 하였다’는 매우 중요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여기에서 ‘애굽의 수치’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애굽 땅은 마귀가 지배하고 있으며 온갖 죄와 불신과 불행으로 가득 차 있는 이 세상을 상징하는데, 사람들이 이러한 세상에 살면서 가지고 있는 것들 가운데 하나님 앞에서 가장 수치스럽게 느껴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학벌이 부족하거나 지식이 모자라거나 가난하거나 가문이 나쁘거나 얼굴이 못생겼거나 질병에 걸리는 등 사람들마다 가지고 있는 불행한 조건들 때문에 수치스러운 것이 아니고, 인류의 조상이 선악과를 따먹고 타락함으로써 모든 사람들의 심령과 육체 가운데 죄성이 뿌리 박혀 있기 때문에 부끄럽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요한계시록 3장 18절을 보면 “흰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라.”고 하셨는데 이 말씀은 범죄하기 쉬운 환경 가운데 있을지라도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들 앞에서 죄성으로 말미암아 나타나는 악한 행실이 없도록 하라는 뜻입니다. 또한 요한계시록 16장 15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서도 부끄러움을 보이지 말라는 것은 죄성으로 말미암아 나타나는 악한 행실을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 보이지 않도록 늘 깨어서 빛된 생활을 하라는 권면의 말씀입니다.
이러한 말씀들을 종합적으로 분석해 볼 때, 죄성 즉 원죄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것들 가운데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움을 가장 크게 느낄 수밖에 없는 문제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원죄에 대하여 바울 사도는 로마서 7장 20절에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이 말씀은 바울 사도께서 첫 번째와 두 번째 연단과정을 통과할 때에도 죄성에 대한 경험을 어느 정도 하였겠지만, 특히 세 번째 연단과정을 통과할 때 자신의 심령 속에 죄성이 뿌리 박혀 있다는 사실을 많은 경험을 통해서 확실하게 깨닫고 고백한 것입니다. 여기서 바울 사도는 원죄 즉 죄성에 대하여 심각함과 부끄러움과 절망을 크게 느끼면서,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모든 문제들 가운데 이 원죄가 가장 큰 문제점이라는 사실을 확실히 가르쳐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죄성 즉 애굽의 수치는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내가 오늘날 애굽의 수치를 너희에게서 굴러가게 하였다.”고 하신 말씀을 볼 때 용서를 받음으로써 해결되는 것이 아니고, 뿌리를 뽑는 것과 같이 제거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의 입구에 있는 할례산에서 육적 할례를 받은 것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낙원, 즉 하나님의 나라 입구에서 영혼 가운데 뿌리 박혀 있는 죄성이 굴러 떨어지는 체험, 즉 영적 할례를 받는 체험에 대한 모형입니다. 다시 말해서 천국으로 들어갈 성도들은 광야연단과정을 통과하면서 행실이 정결해진 다음에 천국의 입구에서 원죄, 즉 죄성의 뿌리가 뽑히는 체험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또 중요한 것은 할례은총을 받을 수 있었던 할례산이 출애굽하던 장소나 율법을 받았던 시내산이나 광야의 어떤 장소에도 없었으며, 오직 한 곳 즉 가나안 땅의 입구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도 하나님의 소명을 받고 신앙생활을 시작했던 75세 때에 할례를 받은 것이 아니고, 99세가 되었을 때 영혼의 할례를 받게 되었기 때문에 그 상징적인 증표로서 육체의 할례를 받게 하셨던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아브라함은 75세 때부터 24년 동안 광야연단과정을 통과하고, 99세 때에 비로소 새 이름을 받고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영적 할례를 성경은 ‘마음의 할례’ 혹은 ‘그리스도의 할례’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2장 28-29절을 보면 “대저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라,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신령에 있고 의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고 하였는데 이 말씀 중에서 마음의 할례는 영적 할례를 가리켜 말합니다. 영적 할례란 영혼 속에 뿌리박힌 죄성 즉 원죄가 굴러 떨어짐으로써 즉 제거됨으로써 의롭다하심을 받는 체험을 가리켜 말합니다.
그리고 골로새서 2장 11절을 보면 “또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적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고 하였는데, 여기에 나온 ‘그리스도의 할례’도 영적 할례를 가리켜 말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영적 할례는 사람의 능력이나 선행 때문에 받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공로 때문에 받게 되는 하나님의 은총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할례산에서 할례를 받은 후에 여호수아의 영도를 받으면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정복하게 되었습니다. 이 가나안 땅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그의 자손’ 즉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하여 약속하셨던 기업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들어가 정착하기 전까지 이 땅에는 하나님을 불신하고 거역하며 우상을 숭배하던 가나안 7족(族) 즉 가나안 족속과 헷 족속과 히위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여부스 족속이 살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들어가서 살게 되는 이 가나안 땅은, 성도들이 들어가서 영원한 복락을 누리며 살게 되는 하나님의 나라를 상징하는 장소일 뿐 아니라, 성도들의 영을 상징하는 곳입니다. 그리고 가나안 7족이 우상을 숭배하면서 살고 있던 가나안 땅은 일곱 가지 죄성이 뿌리박힌 상태로 정욕을 섬기면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영을 가리켜 말합니다. 따라서 여호수아를 통해서 가나안 7족을 멸망시켰다는 것은 성령께서 성도들의 영에 뿌리 박혀 있는 죄성을 제거해주시고, 그 가운데 내주하시어 심령천국을 만들어주셨다는 것을 상징합니다.
여기에서 일곱 가지 죄성을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교만성, 포악성, 음란성, 아집성, 질투성, 태만성, 거짓성 등입니다. 이러한 죄성 즉 마귀의 성질이 뿌리 박혀 있는 사람들의 영은 더럽고 악하기 때문에 영혼 가운데 있는 죄성이 제거되는 은총, 즉 영적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은 그 죄성으로 말미암아 지옥에 들어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의 길을 다 통과할 때까지는 가나안 7족이 가나안 땅에 살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출애굽한 성도들이 광야의 모든 연단과정을 마치고 정결케 되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까지는 영 가운데 죄성이 뿌리 박혀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의 길을 다 통과한 후에 가나안 7족을 멸망시킨다는 것은 성도들이 광야를 통과하면서 행실을 정결케 한 후에 영 안에 뿌리 박혀 있는 일곱 가지 죄성이 제거되는 은총 즉 영적 할례를 받게 된다는 것을 상징합니다.
「천로역정」을 보면 가나안 7족을 정복하는 과정에 대하여 기독도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통과하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기독도는 아볼루온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후에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가게 되었는데, 이곳은 음침한 구름이 산란하게 떠돌고 사망이 날개를 펼치고 있으며, 오른편에는 개천이 있고 왼편에는 깊은 수렁이 있어서 매우 무서운 곳이었습니다. 또한 망령들과 각색 괴물들과 용들이 있어서 계속 울부짖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기독도는 이 골짜기를 통과하는 중에 점점 정신이 혼란해져서 자신의 소리도 알지 못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기독도는 이렇게 불쾌하고 위험스러운 환경 가운데 한동안 전진하다가, 앞서 가던 어떤 사람이 말하는 소리를 듣게 되었습니다. “내가 사망의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아니함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이때 기독도는 이렇게 험난한 길인데도 불구하고 통과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과 하나님께서 언제나 함께 해주신다는 것을 깨닫고 기뻐하였습니다.
조금 후에 어둡던 밤이 지나가고 아침이 되어 해가 떠오르자 기독도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 통과했다는 것을 알고 크게 감격하였습니다. 이 해를 보는 순간 기독도는 “주의 등불이 내 머리에 비치시매 내가 그 밝은 빛을 힘입어 흑암 가운데서도 진행하였노라.”고 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는 암울한 환경 가운데서 괴로움을 많이 당하는 과정인데, 그 내용을 좀 더 구체적으로 해설해 보겠습니다. 기독도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한걸음 한걸음 통과하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수아를 따라 가나안 7족을 하나하나 정복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이곳에 있는 망령들과 괴물들과 용들은 이 과정을 통과하는 성도들을 괴롭히고 멸망시키려고 하는 악령들을 상징합니다. 이 악령들이 때로는 속살거리기도 하고 또 맹렬하게 울부짖으며 삼키려고 하기 때문에 기독도는 크게 두려움을 느끼는데, 이것은 마귀들이 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통과하는 성도들을 공격하여 영적인 것과 육적인 것을 혼동시키고 정신을 잃어버리게 하며 괴롭히는 것을 상징합니다.
다시 말해서 이 악령들은 가나안 7족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 땅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수많은 방법으로 공격을 하는 것과 같이, 성도들의 영을 빼앗기지 않고 계속 지배하기 위하여 공격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기독도가 아주 좁고 협착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아슬아슬하게 통과한다는 것은, 이 과정을 통과하는 성도들이 영혼이나 육체나 환경 가운데 큰 어려움을 겪으면서 간신히 통과하게 된다는 것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기독도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 통과했을 때 날이 새고 밝은 해가 떠오르기 시작했다는 것은, 성도들이 이 골짜기를 다 통과한 직후 천국 보좌에 계신 하나님으로부터 흘러내리는 생명수를 풍성하게 체험하기 시작한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중국의 성자 워치만 니는 그의 저서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의 생활』에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통과할 때 경험하였던 것을 간증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워치만 니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통과하는 과정을 ‘암흑의 밤’을 통과했다고 하였으며,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분배받는 체험을 ‘부활의 아침’을 체험했다고 하였습니다.
암흑의 밤을 통과하는 동안 하나님께로부터 버림을 당했던 것처럼 표현하였으며, 그 기간은 수개월동안이라고 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증언을 ‘영적 성장론’에 비추어 분석해보면, 워치만 니의 ‘암흑의 밤’에 대한 견해는 천로역정의 기독도가 회의와 억겁을 만날 때부터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 통과할 때까지 걸린 기간을 가리켜 말하는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성도들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통과하는 기간은 약 한달 정도 걸리는 것으로 판단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는 이 책에 나온 암흑의 밤에 대한 내용을 소개함으로써 이해를 돕고자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 이상 감히 자기 자신을 신뢰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깊고 암흑한 경험을 통하여 우리의 자아 능력이 상처를 받아 근본적으로 약해지는 지점에까지 우리를 이끌어 오셔야만 하는 것이다. 어떠한 방법으로 그렇게 할는지 나는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일을 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들을 그 지점까지 인도하시기 위하여 그들을 대단히 가혹하게 다루시고 곤란하고 고통스러운 길로 인도하지 않으면 안 되셨던 것이다.
우리가 가장 참기 어려운 것은 그 암흑의 밤을 통과해야 된다는 것이다. 주님은 은혜로 나의 생애 가운데 한 번 나를 수개월동안 내버려두신 과정, 즉 영적으로 완전히 어두운 상태에 집어넣으신 일이 있었다. 그것은 거의 주님께서 나를 버리신 것 같았으며, 아무 일도 진행되고 있는 것 같지도 않았고, 나는 정말 종말에 이른 것만 같았다. 그 다음에 주님은 점차 모든 것을 원 상태로 회복시켜 주셨다.
다른 성도들의 경우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시는데 얼마나 오랜 기간이 걸리게 되는지 나는 모른다. 그러나 원칙적으로 나는 안심하고 이렇게 이야기한다. 즉 하나님께서 당신을 거기에 머물러 두시는 일정한 기간이 있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마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같이 보일 것이다. 당신이 귀하게 생각하던 모든 것이 당신 손에서 빠져나간다. 거기서 당신은 문이 없는 벽을 직면한다. 겉으로 보기에 다른 사람들은 축복을 받으며 사용되는 것같이 생각이 된다. 반면에 당신 자신만 외면을 당하며 패배를 당하는 것같이 생각이 된다. 조용히 누워있어라. 만물이 암흑 가운데 있다. 그러나 아론의 지팡이가 불과 하룻밤이 지나자마자 싹이 난 것과 같이 부활의 아침은 틀림없이 오는 것이다. 그것은 실로 온밤이 필요한 것이다. 그 후 당신은 영광스러운 부활의 영역에서 모든 것이 돌려주시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그리고 전에 있었던 것과 현재 있는 것과의 차이를 아무도 측량할 수가 없다.』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의 생활』 생명의 말씀사 1976년, p276-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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