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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7,8장의 올바른 이해
빛과 진리  
작성자 자료부
작성일 2019-07-02 (화) 15:24
분 류 성경핵심진리
ㆍ조회: 35      
로마서7,8장의 올바른 이해
1. 성경의 로마서 7:6-8:2에 대한 기본적 이해
로마서 7장과 8장은 사도 바울이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한 때부터 신앙생활을 하는 동안 하나님의 뜻대로 선하고 의롭고 거룩한 영적 생활을 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다가, 하나님의 생명이 심령 가운데 내주하여 죄의 법에서 해방되는 경험을 할 때까지 있었던 체험적 사실을 종합적으로 정리하여 기록한 진리입니다. 그 중에서 로마서 7:6-8:2은 모든 성경 말씀 가운데 가장 중요한 진리이며 핵심적인 복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로마서를 깊이 연구한 분이라면 누구든지 이 부분이 성경 66권 중에서 가장 중요한 하나님의 복음이라는 것을 많이 강조하고 있지요. 이 말씀은 모든 성도들에게 해당되는 말씀이 아니고, 완덕을 추구하면서 온전히 거룩한 생활을 간절하게 사모하는 성도들만이 이해할 수 있고 체험할 수 있는 말씀이라는 것을 꼭 알아야 합니다. 이 말씀은 사람으로서는 절대로 해결할 수 없는 죄문제가 하나님의 은총 즉 성결은총으로 말미암아 경험적으로 해결되는 원리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중에서 로마서 7장은, 성도들이 신앙생활을 시작할 때부터 영혼 가운데 하나님의 생명이 내주합일될 때까지, 마음속에 나타나는 죄의 법칙 때문에 고민하는 경험에 대하여 기록한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읽을 때 먼저 중요시해야 할 것은, 사도 바울이 로마서 7장에서 증거하는 것은 불신자였을 때나 초보적인 신앙생활을 할 때의 경험을 기록한 진리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해서 로마서 7장의 고민은 죄의 능력이 얼마나 강한지를 경험적으로 깨달은 성도 즉 영적으로 어느 정도 성장한 성도들이 하나님의 모든 계명을 지켜보려고 최선을 다할 때 나타나는 고민이라는 것입니다. 모든 성도들은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출애굽하게 되면 빛과 어둠, 선과 악에 대하여 점점 폭넓게 인식하게 됩니다. 다시 말해서 성도들은 영적으로 성장하는 가운데 점진적으로 선과 악, 빛과 어둠에 대한 지식을 경험적으로 얻게 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곧 성도들이 하나님의 계명대로 철저하게 살려고 노력할 때 비로소 내면적인 죄악의 세력이 얼마나 추하고 강한지를 경험적으로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하나님의 뜻을 따라 철저하게 생활하고자 하지 않는 성도들은 로마서 7장의 말씀과 같이 내면적인 죄 때문에 심각하게 고민하는 경험을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로마서 8장의 경험과 은혜를 받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2. 범죄하기 쉬운 기회가 생길 때마다 나타나는 내면적인 죄
이제부터 사도 바울이 로마서 7장과 8장을 통해서 증거한 경험적 진리를 연구해 보겠습니다. 로마서 7:19을 보면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하는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이 말씀을 보면 사도 바울이 흠이 없는 완전한 선을 행하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하셨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범죄하기 쉬운 환경이 생길 때마다 사도바울이 원하는 선한 마음은 나타나지 않고, 오히려 원치 않는 악심이 자꾸만 마음속에 나타나더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과 같이 온전한 사랑과 겸손과 충성과 절제 그리고 온유와 인내로써 생활하기를 원하는데, 항상 흠과 티가 많고 불완전하다는 것을 느끼면서 큰 고민에 빠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탄식하고 절망하는 사도 바울의 괴로운 심정을 로마서 7장에 기록한 것이지요.
이 말씀 중에서 ‘악’은 표면적으로 나타나는 죄악이 아니라 내면적인 죄악을 가리켜 말합니다. 여기에서 표면적인 죄악은 우리의 말과 표정이나 행동을 통하여 나타나는 즉 겉으로 나타나는 죄악을 의미합니다. 이 표면적인 죄악은 우리가 철저하게 노력하면 범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지요. 예를 들면 공자나 석가모니, 소크라테스 같은 위인들은 얼마나 훌륭한 인격을 갖추신 분들이었습니까? 오늘날에도 각 분야에서 도덕적으로 훌륭한 인격을 갖춘 분들이 간혹 있는데, 그분들은 행실 가운데 표면적인 죄악을 쉽게 나타내지 않음으로써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표면적인 행실이 아무리 훌륭해도 내면적인 죄를 나타내지 않도록 할 수는 없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로마서 7:19에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한다.”는 것은 표면적인 죄를 가리켜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내면적인 죄 즉 마음속에 나타난 악심을 가리켜 말합니다.
그러면 내면적인 죄는 어느 때 잘 나타날까요? 억울한 일을 당하거나, 애매한 말을 듣거나, 잘못한 일이 없는데도 다른 사람이 침을 뱉고 얼굴을 때리고 욕설을 퍼부을 때 순간적으로 마음속에 분노나 미움, 혈기가 나타나게 됩니다. 또한 음란한 잡지나 비디오, 소설, 영화, 인터넷 같은 것을 볼 때 순간순간 마음속에 여러 가지 음란한 마음이 떠오르게 되지요. 또한 큰 자랑거리가 생기거나 남에게 높임을 받게 될 때는 교만한 마음이 생기고, 경쟁자가 자기보다 모든 일이 잘 되고 인정받게 될 때는 시기하는 마음이 생기게 됩니다.
이와 같이 범죄하기 쉬운 환경과 기회가 생겼을 때 내면적인 죄가 나타나서 고민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또 다른 실례를 들어 보면, 청소를 잘하고 늘 깨끗한 환경을 좋아하는 어떤 사람의 집안에 아이들이 개구쟁이 같은 친구들을 데리고 와서 온 집안의 물건들을 엉망진창으로 어질러 놓거나 온갖 더러운 쓰레기나 먼지 같은 것으로 더럽혀 놓았을 때, 성내지 않고 주님과 같이 온유한 마음으로 아이들을 사랑하려고 하는데도 순식간에 마음 가운데 분노나 신경질이나 미움이 나타나게 됩니다. 이와 같이 사도 바울은 겉으로 행하는 죄가 아니라 마음속에 나타나는 내면적인 죄악 때문에 고민한 것입니다. 로마서 7:15의 말씀을 보면 “나의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원하는 이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그것을 함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행한다’는 표현 때문에 마치 행실로 나타나는 죄로 인하여 고민하는 것으로 왜곡된 해석을 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8절에서는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내 속에서 각양 탐심을 이루었나니 이는 법이 없으면 죄가 죽은 것임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을 자세히 분석해 보면 행실로 범하는 죄가 아니라 내면적인 죄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내 속에서’ 각양 탐심을 이루었다고 하였으므로, ‘내 속’ 즉 내 마음 가운데 나타난 죄악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가르쳐 주고 있다는 것이지요. 예를 들자면 예수님께서 산상보훈을 통하여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마5:28)고 하셨는데, 이 말씀도 역시 마음속에 나타난 내면적인 죄에 대하여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원죄 즉 죄성을 가지고 있으므로 범죄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뜻대로 철저히 살고자 하는 성도들이라면 누구나 이 말씀이 마음에 나타난 경험을 해 보았을 것입니다. 또한 요한일서 3:15을 보면,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라고 하였는데, 이 말씀도 역시 마음속에 나타난 미움 즉 악심을 범죄한 것으로 인정한다는 것을 알 수 있지요. 구약시대의 율법은 주로 표면적인 죄 즉 행실로 범한 죄를 정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신약시대에 와서 예수님께서는 형제가 우리를 괴롭히거나 애매한 말로 비방을 하거나 손해와 고통을 줄 때, 참고 견디다가 마음속에 순간적으로 미움이나 분노, 짜증이나 신경질 같은 악심이 나타났다면, 비록 폭언이나 폭행이 없을지라도 그 악심 자체를 살인죄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내 속에 각양 탐심을 이루었다.”고 고백하신 것을 보면, 사도 바울은 일곱 가지 죄성 중에서 이기주의 즉 아집성이 강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죄가 기회를 타서 탐심을 이루었다.” 고 하셨는데, 여기에서 ‘죄’는 마음속에 나타난 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원죄’ 즉 근본적으로 영 속에 뿌리박혀 있는 ‘죄성’을 가리켜 말합니다. 이 죄성이 육체와 영 속에 뿌리박혀 있다가 범죄하기 쉬운 기회가 주어지면 마음속에 나타나는 것이지요. 사람마다 칠종죄(七種罪)는 다 가지고 있지만 개인별로 나타나는 죄성의 정도는 다양합니다. 예를 들어 포악성이 강한 사람은 포악성이 나타날 수밖에 없는 환경이 주어질 때마다 마음속에 혈기나 분노가 잘 나타나게 됩니다. 그러나 포악성이 약한 사람은 기회가 주어져도 악심이나 악행이 쉽게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범죄하기 쉬운 기회가 주어질 때 마음속에 나타나는 죄에 대해서 말씀드렸습니다.
죄를 크게 구분하면 영과 육체 가운데 뿌리 박힌 ‘죄성’과 마음 가운데 나타나는 악심 즉 ‘내면적인 죄’, 그리고 행실로 나타나는 ‘표면적인 죄’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이 중에서 영 속에 뿌리박힌 죄성은 영적할례은총 즉 성결은총을 받을 때 제거됩니다. 또한 내면적인 죄는 범죄하기 쉬운 기회가 생길 때, 영과 육체 가운데 뿌리박혀 있던 죄성이 자극되어 나타나는 악심을 가리켜 말합니다. 그리고 표면적인 죄는 말과 행동으로 나타난 죄의 열매를 가리켜 말합니다. 이와 같이 죄에 대하여 선명하게 구분할 수 있어야만 진리 전체를 쉽게 깨달을 수 있습니다.
 
3. 하나님의 계명과 내면적인 죄
사도 바울께서는 마음속에 나타난 탐심 때문에 고민을 많이 하셨는데, 계명으로 말미암아 자신의 그 탐심을 깨닫게 되었습니다(롬7:7-12). 성도들의 양심 가운데 하나님의 계명이 새겨지면, 그 계명대로 생활하기 위하여 노력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범죄하기 쉬운 기회가 주어지면 마음속에 내면적인 죄 즉 악심이 나타나는데, 이것은 양심에 새겨진 계명 때문에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성도들은 하나님의 빛 가운데서 철저하게 순종하는 생활을 하고자 하면 내면적인 죄를 더욱 선명하게 알게 되지요. 다시 말하면 예수님과 같이 온전한 사랑과 인내와 겸손을 실천하려고 결심했는데, 범죄하기 쉬운 환경과 조건이 생길 때마다 순간순간 미움이나 분노나 음욕, 질투, 교만, 거짓과 같은 악심이 마음속에 나타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고자 마음속에 조금이라도 음욕을 느끼지 않으려고 결심했는데, 벌거벗고 춤을 추는 여자를 보니까 원하지 않던 음욕이 마음속에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또한 음욕을 느끼지 않으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더욱 선명하게 음욕이 느껴지기 때문에 고민을 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내면적인 죄 때문에 고민하기 전에는 죄가 없었는데, 계명을 알게 됨으로써 죄가 생긴 것으로 착각하면 안된다는 거예요. 성도들이 예수님의 계명 즉 빛에 대한 말씀을 몰랐을 때는 마음속에 나타나는 죄를 의식하지 못하다가 그 계명에 따라 철저하게 살려고 노력할 때, 비로소 죄의 세력이 얼마나 막강한지 구체적으로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계명을 통해 무엇이 선이고 악인지 혹은 무엇이 빛이고 어둠인지를 알면 알수록, 그리고 그 계명을 실천하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이 로마서 7장의 고민은 더욱 심하게 순간순간 느껴지는 것입니다.

4. 내면적인 죄를 온전하게 해결할 수 없는 인간의 고민
83년도에 성결교 신학교에 다니던 학생 한 분에게 진리를 증거할 때의 일입니다. 그 신학생은 로마서 7장을 공부하던 중에 주장하기를, “원죄를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마음속에 죄가 나타나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니냐?”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그 신학생은 “기독교인이라면 성령의 도움을 받아 내면적인 죄를 억제함으로써 표면적으로 죄가 나타나지 않도록 하면 되지 않느냐?”고 강조하는 것이었지요. 그리고 “아무리 신앙과 인격이 좋다고 할지라도 마음속에 순간순간 나타나는 악심 즉 내면적인 죄가 없는 사람이 있을 수 있느냐?”고 반문하는 것이었어요. 물론 대부분의 성도들이 로마서 8장 경험에 들어가지 못한 상태이므로, 그 신학생이 가진 견해에 대하여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가 앞에서 고민했던 모든 죄 문제를 완전하게 해결할 수 없다면 어떻게 하나님께서 직접 세우신 종교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사도 바울은 범죄하기 쉬운 환경이 나타났을 때, 마음속에 순간적으로 나타나는 악심까지도 해결해 주시는 하나님의 은총이 준비되어 있다는 사실을 증거하기 위해서, 로마서 7:11-24에 내면적인 죄에 대하여 자세히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마음 속으로 티끌만한 악심이라도 나타나지 않기를 소원하면서 정결한 생활을 추구하는 성도들만 성결은총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사55:1)고 하신 말씀과 같이 갈급한 마음을 가진 성도들은 이러한 은총을 받을 수 있는 것이지요.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사도 바울과 같이 내면적인 죄 때문에 고민하는 성도들에게 그 해답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사죄은총과 성결은총을 준비해 놓으셨을지라도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끼지 못하는 사람에게 일방적으로 주시지는 않는다는 것이지요.
성경 말씀을 중심으로 좀더 자세하게 설명드리겠습니다. 로마서 7:9을 보면 “전에 법을 깨닫지 못할 때에는 내가 살았더니 계명이 이르매 죄는 살아나고 나는 죽었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전에 법을 깨닫지 못한 때’ 즉 성도들이 의와 죄, 빛과 어둠에 대한 법도를 깨닫지 못했을 때에는 내가 살았었는데, ‘계명이 이르매’ 즉 성도들의 양심 가운데 하나님의 계명이 들어오고 그 계명대로 실천하고자 하는데 도리어 죄는 살아나고 나는 죽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잘못 해석하면 마치 계명이 마음속에 죄악을 공급한 것으로 착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면 여기서 살았다는 말과 죽었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이 말씀을 정확하게 깨달아야 생명과를 먹는 진리가 이해됩니다. ‘내가 살았더니 … 나는 죽었도다.’라는 말씀은 선을 행하려고 최선을 다했지만 마음속에 악심이 나타남으로 순간적으로 절망에 빠진 경험을 기록한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좀더 구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하여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마5:44)라는 계명을 온전하게 지키려고 노력하는 성도들의 경험을 참고로 설명해 보겠습니다. 대부분의 성도들은 예수님의 계명을 뜨거운 심정으로 깨닫게 될 때 원수까지도 쉽게 사랑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면서 실천하고자 합니다. 이 때 성도들이 선한 의지를 가지고 계명을 실천해 보고자 하는 마음을 ‘내가 살았더니’라는 말씀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여기서 ‘내가’는 ‘나의 선한 의지’ 즉 ‘나의 선한 마음’을 가리켜 말하는데, 성도들이 인내와 겸손, 자비, 온유를 가지고 온전한 사랑을 실천하기 위하여 노력하는 마음자세를 ‘내가 살았더니’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원수가 나타나 비방을 하거나 무시하고 폭행을 하면서 큰 손해를 끼치는 등 갑자기 억울한 일을 당하는 순간 마음속에 교만이나 미움이나 분노가 나타나더라는 것입니다. 티끌만한 미움이나 분노 혹은 교만이 없는 깨끗한 마음으로 원수를 사랑하고자 하는데, 선한 마음만 가지고 생활하고자 하는 소원과는 반대로 미움이나 교만, 분노 같은 죄가 마음을 순간적으로 점령하기 때문에 ‘나는 죽었도다.’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범죄하기 쉬운 그 순간에 말과 행동으로는 범죄하지 않을 수 있어도 마음속에 악심이 나타나지 않게 할 수 있는 능력은 없더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진리가 정확하게 해석되어야만 로마서 8장을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유교의 창시자인 공자에 대한 이야기를 살펴보도록 하지요. 유교의 경전 논어에는 공자의 사상과 교훈이 담겨져 있는데, 조선 시대에는 논어에 기록된 유교사상이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지요. 그런데 죄성을 가지고 있는 인간은 공자의 교훈이 너무나 엄격하여 온전하게 실천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공자님에 대한 예화들이 많이 있는데, 그 중에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날 공자의 가족들이 입던 옷을 도둑 맞은 적이 있었는데, 공자는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어려운 사정을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맷방석을 가져다가 가족들의 숫자대로 구멍을 뚫어서 그 구멍으로 목만 내놓고 생활한 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외출해야 할 경우에는 한벌 옷을 가지고 번갈아 가며 입었다고 하지요. 이와 같이 도덕군자였던 공자께서 임종할 때 탄식하시기를 “내가 70평생 도를 닦으며 많은 사람들에게 예의범절을 가르쳤지만, 아직도 내 마음속에 순간순간 나타나는 탐심은 없애버리지 못했다.”고 하셨답니다. 이와 같이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도덕군자 중에 한 분이셨는데도 마음속에 순간적으로 나타나는 탐심을 없애지는 못했다는 것입니다.
 
5. 죄의 법에 대하여 깨달은 사도 바울
사도 바울께서 18절에 “선을 행하는 능력은 없노라.”고 하신 말씀은 공자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마음속에 순간순간 나타나는 탐심을 없애버릴 능력이 자신에게는 없다는 것을 고백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21절에서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라고 하신 것이지요. 이 말씀에서 ‘법’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지금까지 증거했던 경험적 진리와 전부 연관해서 해석해야 합니다. 이 ‘법’은 범죄하기 쉬운 기회가 생길 때마다 마음에 나타나는 죄의 법을 가리켜 말합니다. 구체적으로 설명드리면, 짜증나고 화가 날 일이 생겼을 때 마음속에 분노가 생기거나 음란한 영화나 책, 사람을 보았을 때 마음속에 음욕이 나타나는 것, 밉살스러운 사람이 나타나서 얄미운 짓을 할 때 마음속에 미움이 느껴지는 것 등, 이러한 악심이 나타나지 않기를 언제나 소원하는 데도 기회만 주어지면 마음속에 나타나는 악심이 바로 ‘죄의 법칙’이라는 것입니다. 마치 ‘원하는 바 선’은 행치 않고 미워하고 싫어하는 악심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법칙과 같이 자동적으로 나타난다는 것이지요. ‘법칙’이라는 말은 항상 똑같이 나타날 수밖에 없는 원리를 설명한 말입니다. 예를 들어서 뉴턴이 발견한 만유인력의 법칙은 공기보다 더 무거운 물체를 공중에서 놓게 되면 반드시 아래로 떨어진다는 원리를 설명한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사도 바울은 죄를 범하기 쉬운 환경이 생길 때마다 법칙과 같이 마음속에 죄 즉 악심이 나타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 법칙을 구체적으로 표현하면 죄성의 법칙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로마서 7장에 기록한 죄라는 말을 해석할 때, 그것이 자범죄를 가리켜 말하는 것인지, 마음속에 나타난 악심을 가리켜 말하는지, 죄성을 가리켜 말하는지 잘 분별해야 합니다. 여기에서 죄의 법은 바로 죄성의 법칙을 말하는 것으로써, 죄성의 능력의 법칙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만일 죄가 능력이 아니라면, 악심을 품지 않으려고 노력할 때마다 순간적으로라도 마음속에 악심이 나타나지 않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마음속에 악심이 나타나지 않도록 하려고 항상 노력을 했는데도 범죄하기 쉬운 기회가 생길 때마다 꼭 나타나기 때문에 ‘죄의 법’ 즉 죄의 법칙이라고 한 것입니다. 이 죄의 법칙을 좀더 구체적으로 표현하면 교만의 법칙, 분노의 법칙, 미움의 법칙, 짜증의 법칙, 음란의 법칙 등 너무나 다양합니다. 그러나 다양한 죄성 중에서도 강한 죄성이 더욱 심하게 나타난다는 것을 알아야 하지요. 어떤 사람이 화는 쉽게 내지 않는데 질투성이 강하다면, 다른 사람이 자기보다 더 잘되거나 더 예쁘거나 목소리가 아름답거나 하면 자신도 모르게 질투심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그런가 하면 교만성이 강한 사람은, 자기와 경쟁하는 사람이 인정을 받거나 칭찬을 들을 때 기분이 나빠지거나 헐뜯는 말을 하기 쉽습니다. 이러한 죄의 법칙이 나타나게 된 것은 사람들의 심령 가운데 죄성이 뿌리박혀 있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께서도 성결은총을 받기 전에는 이러한 죄의 법칙을 자신의 마음 가운데서 언제나 발견하면서 고민해 왔던 것입니다. 로마서 7:22-23을 보면,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는다는 것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법도 즉 계명을 따르고자 하는데, 순간순간 죄의 법칙이 나타나서 선한 마음을 가지고 계속적으로 살고자 하는 성도들을 방해한다는 것이지요. 또한 ‘마음의 법’은 선하게 살고자 하는 의지를 말하는데, 그 의지가 순간순간 죄의 법 아래로 사로잡히더라는 것입니다.
 
6. 죄의 법 때문에 절망할 수밖에 없는 인간
그런데 신자든 불신자이든 죄의 법칙에 사로잡히지 않는 경우가 간혹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불신자라 할지라도 자기 아들이 서울대나 사법고시에 합격했을 때, 혹은 국회의원이나 대통령에 당선되었을 때는 마음속에 기쁨과 행복감이 꽉 차게 됩니다. 이러한 때에는 누가 비난을 하거나 욕설을 할지라도 마음에 기쁨이 꽉 차 있기 때문에 악심이 들어오지 않는 경우도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기독교인들도 오랫동안 고통을 주던 질병이 고침받거나 성령충만함을 받거나 특별히 좋은 일이 생겼을 때, 악심 즉 죄의 법칙이 나타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경우에 죄의 법칙에서 해방된 줄로 착각해서는 안된다는 것이지요. 포악성이 강한 어떤 성도가 부인이 원망과 불평을 할 때마다 마음속에 분노나 미움이 잘 나타나기 때문에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그 성도님은 기도원에 가서 금식하며 간절하게 기도하기를, “하나님 아버지, 저에게 은혜와 능력을 주십시오. 특별히 원망과 불평을 잘하는 아내를 향해서 미움을 품거나 분노를 나타내지 않도록 도와 주십시오.”라고 하였답니다. 그런데 기도를 하는 중에 뜨거운 불이 내리면서 방언이 터지는 등 큰 은혜를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성도님은 마음속에 기쁨이 충만하여 앞으로는 범죄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처음 며칠 동안은 부인이 아무리 불평을 하고 원망하여도 은혜 받은 기쁨 때문에 잘 인내하였습니다. 그러나 참고 참다가 나중에는 과거보다 더 심한 분노와 짜증을 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로마서 8장 경험에 들어가지 않은 사람들은 일시적으로 범죄하지 않을 수는 있지만 근본적으로 죄의 법칙에서 해방된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로마서 7:24에서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고 탄식하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마음속에 나타나는 죄의 법칙을 인간의 노력으로서는 결코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면서 절망에 빠지게 된 것입니다. 여기에서 사망의 몸이란 죄성이 뿌리박혀서 마음속에 죄의 법칙을 나타내고 있기 때문에 죽을 수밖에 없는 몸이라는 뜻입니다.
 
7.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되게 한 ‘생명의 성령의 법’
이와 같이 절망적인 탄식을 하다가 사도 바울은 죄의 법에서 해방되게 하시는 큰 은총이 있다는 것을 로마서 7:25에서 증거하고 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이 말씀을 잘못 해석하면, 육신적이고 세상적인 문제 즉 병이나 사업, 자녀문제 등이 해결되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극심하게 고민하던 사도 바울의 죄 문제 즉 마음속에 나타나는 죄의 법칙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나타나지 않게 되었다는 것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바울 사도는 오랜 세월동안 고민하고 탄식하게 했던 죄의 법칙에 대한 문제가 예수님께서 나타내신 은총으로 말미암아 해결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성결교 신학교에 다니던 신학생이 사람으로서는 결코 해결할 수 없다고 주장하던 내면적인 죄문제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해결되었다는 것을 확증한 것입니다. 이러한 경험을 웨슬리 신학에서는 ‘완전성화’ 즉 ‘성결은총’이라고 하는데, 곧 죄의 뿌리가 제거되는 체험이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의 은총으로 말미암아 죄문제가 해결되었다는 사실을 구체적으로 설명한 말씀이 로마서 8:1-2에 나옵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이 말씀 중에서 죄와 사망의 법을 구분하여 생각해 보겠습니다. 먼저, 죄의 법은 범죄하기 쉬운 기회가 생겼을 때 마음속에 나타나는 죄의 법칙을 가리켜 말합니다. 또한 사망의 법은 육체의 죽음이 법칙과 같이 필연적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서 사망의 법은 육체 가운데 죄성의 뿌리가 박혀 있을 뿐만 아니라 마음 가운데 죄의 법칙이 나타나도록 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죽을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죄의 법칙이 나타나기 때문에 육체는 죽을 수 밖에 없으므로, 죄와 사망의 법칙이 모든 인간을 지배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로마서 8:2를 보면, 생명의 성령의 법이 마음 가운데 나타날 때 비로소 죄의 법에서 해방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말미암아 죄의 법에서 해방되게 하신다는 말씀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생명이 영 속에 내주하면 마음속에 생명의 성령의 법칙이 나타나게 되는데, 그 때 비로소 죄의 법칙에서 근본적으로 해방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계시록 2:7을 보면, 하나님의 생명이 영 속에 내주한 성도들을 가리켜 생명과를 먹은 성도들 즉 이기는 자들이라고 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이치를 볼 때, 로마서 8장은 생명과를 먹은 성도들에 대한 경험적 진리이고, 로마서 7:6-24에 기록된 말씀은 아직 생명과를 먹지 못한 성도들 즉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위하여 광야의 길을 통과하는 성도들이 경험하는 진리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생명이 영 속에 내주한 성도들은 범죄하기 쉬운 기회가 생겼을 때 마음속에 죄의 법칙이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공중으로 강림하실 때 휴거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와 같이 하나님의 생명이 영 속에 내주하는 은총을 받았기 때문에 로마서 7:25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대부분의 교회나 성도들은 예수님을 영접하고 성령을 체험하게 되면 무조건 하나님의 생명이 영 속에 내주하신 것으로 잘못 알고 있기 때문에, 로마서 7장과 8장에 기록된 진리를 체계적으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로마서 8:2에 나오는 생명의 성령의 법칙은 하나님의 생명이 성도들의 영 속에 내주하셔야만 마음속에 나타난다는 사실을 꼭 알아야 할 것입니다. 이 생명의 법칙은 생명의 초인간적인 능력이 법칙적으로 나타나는 것을 말하는데, 성도들은 생명과를 먹는 순간부터 영원토록 그 능력의 법칙을 가지고 살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히브리서 6:5에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라는 말씀이 있는데, 그 ‘능력’은 병을 고치거나 방언, 예언, 입신을 하거나 환상을 보는 능력이 아니라, 생명의 법칙 즉 성령의 열매를 맺게 해주는 능력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생명의 성령의 법칙에 대해서는 죄의 법칙과 비교하면서 이해해야 합니다. 죄의 법이 능력으로 나타나는 법칙인 것처럼 생명의 성령의 법도 성령의 열매를 맺을 때 하나님의 능력이 법칙적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죄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된 성도 즉 생명과를 먹은 성도는 예수님께서 공중으로 강림하실 때 휴거될 것입니다. 그래서 웨슬리 선생님은 성결은총에 대하여 인간이 이 땅에 살면서 받을 수 있는 최고의 복이라고 증거 하신 것입니다.

8. 휴거될 성도들에 대한 올바른 견해
다음의 예화는 성결은총을 받은 어느 성도님이 1983년 경기도 성남시에서 로마서 7장과 8장을 중심으로 휴거되는 성도의 자격에 대하여 증거할 때 있었던 일입니다.
어느 날 권사님 한 분이 찾아 오셨는데, 그 분은 영등포구에 있는 어느 큰 교회의 교인으로서, ◯목사님이 그 교회를 개척할 때부터 충성스럽게 봉사하신 분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권사님께서는 대화를 하는 가운데 로마서 7장과 8장에 대한 진리를 깨닫고 매우 안타까워하시더라는 것입니다. 그 때 그 권사님께서 안타깝게 느끼는 이유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해 주셨다고 하더군요. 1980년대 초에 ◯목사님을 이단시하는 책이 나왔다고 합니다. 그 때 그 교회의 부목사님 한 분이 그 책을 읽어보고 ◯목사님 앞에 가지고 왔습니다. ◯목사님께서 받아서 읽어보니 자기를 이단시하는 내용인데, 더욱 화나게 하는 것은 얼마 전까지 같은 교단 내에서 함께 일하던 교역자들이 ◯목사님을 이단시하고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들과 합세하여 공격하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그 책의 내용을 보니 자신의 부족한 점도 깨달을 수 있었지만 대부분 과장된 내용이 많았습니다. 그러자 ◯목사님께서는 몹시 분노한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 저는 이제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이 교회는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왜 이런 사람들에게 이런 책을 쓰도록 내버려 두셨습니까?”라고 기도하였답니다. 이와 같이 한동안 항의하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있을 때, 마음속에 “너는 강단에서 원수를 사랑하라고 외치지 않았느냐? 그들을 사랑할 수 없느냐?”라는 영감이 오더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목사님은 “하나님, 제가 어떻게 그 나쁜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반문을 하면서 생각해 보니, 그 목사님 자신이 설교하실 때 “여러분, 우리는 원수까지라도 사랑해야 합니다.”라고 했던 것이 깨달아지면서 진지한 회개기도를 하게 되었답니다. “하나님이시여, 제가 저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그들과 함께 다시 일하게 되기를 원합니다.”라고 기도를 드리는데, 분노와 미움으로 가득 찼던 가슴이 풀어지면서 성령의 충만함을 받게 되었답니다. 그 때 원수같이 느껴지던 그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이 생겼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다음 주일 예배 설교를 통하여 “성도 여러분! 우리는 우리들을 이단시하는 사람들이라도 사랑해야 합니다. 또한 그들을 향하여 욕하지도 말고 미워하거나 분노하지도 맙시다.”라고 열변을 토하셨답니다. 그 때 그 교회의 성도들은 큰 감동을 받고 ◯목사님을 더욱 더 존경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와 같이 이단시하던 교계의 분위기 때문에 타교회의 교역자들이나 교인들로부터는 많은 비난공격을 받고 어려운 일을 당했지만, 그 교회의 교인들로부터는 더욱 존경과 사랑을 받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권사님께서 ◯목사님에 대하여 안타까워하시게 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목사님께서 그 교회의 교인들 대부분이 휴거될 것이라고 가르쳤고, 그 목사님 자신도 휴거될 것으로 확신하면서 설교를 하셨는데, 아직도 죄의 법칙에서 해방되지 않은 분이라는 것을 깨닫고 안타까워하신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 권사님은 ◯목사님께서 자신을 이단시하면서 괴롭히는 사람들을 향하여 순간적이기는 하지만 미움과 분노를 나타내는 모습을 볼 때, 아직 휴거될 자격을 갖춘 분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는 것이지요. 뿐만 아니라 방송설교를 통해서 가끔 시험을 당하는 중에 혈기를 내고 회개하셨다는 간증을 듣게 되는데, 이와 같은 모습을 볼 때 죄의 법칙에서 해방된 분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목사님은 매우 훌륭한 신앙인격을 가지고 많은 기사와 이적을 나타내면서 복음을 증거하시는 하나님의 종이지만, 아직 로마서 8장 경험에 들어간 성도는 아닌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목사님은 마음 가운데 생명의 성령의 법칙이 나타나는 분은 아니라는 것이지요.
여기서 생명의 성령의 법칙이란 범죄하기 쉬운 환경 속에서라도 성령의 열매 즉 빛의 열매를 맺게 하는 능력의 법칙을 가리켜 말합니다. 하나님의 생명 즉 하나님의 영속에는 신성의 능력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생명의 성령의 법은 성도들로 하여금 사랑과 화평과 희락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와 겸손과 정직과 용기의 열매를 맺게 해주는 법칙입니다(갈5:22-23). 또한 죄의 법칙과 마찬가지로 생명의 법칙도 능력이기 때문에 마음속에 침투하고자 하는 죄의 법칙을 생명의 법칙이 막아줌으로써 죄의 법칙에서 해방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로마서 8:2을 경험한 성도들은 범죄하기 쉬운 기회가 나타날지라도 범죄하지 않고 빛의 열매를 풍성히 맺을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로마서 7장과 8장에 기록된 사도 바울의 경험적 진리를 통하여 성도들의 신앙은 마음속에 나타나는 죄의 법 때문에 고민하는 과정이 있는가 하면, 죄의 법에서 해방되어 풍성한 자유를 누리며 빛의 열매를 맺는 높은 경지의 신앙단계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성도들의 영적 성장은 단번에 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경험과 교육과 훈련과정을 통해서 점진적으로 예수님의 형상을 완전히 닮는 경지에 도달하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사도 바울께서도 다메섹 도상에서 발현하신 예수님을 눈부신 빛 가운데서 보았고, 성령충만이나 환상, 입신, 방언체험도 풍성하게 하셨으며, 수많은 신비체험과 성령의 은사체험들을 하면서 누구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을 정확하고 깊이 있게 깨닫고 전도하였으며, 신약 성경의 대부분을 기록할 정도로 하나님의 큰 신임을 받은 분이었습니다. 그러나 바울 사도는 그 어떠한 체험보다도 하나님의 생명이 영 속에 내주함으로써 죄의 법에서 해방되는 체험이야말로, 이 세상에 살고 있는 기독교인이 받을 수 있는 가장 큰 신령한 복이라고 강조하며 증거하고 계십니다. 만일 여러분이 로마서 8장 경험에 들어가기만 한다면, 사도 바울과 같이 죄의 법에서 해방되어 생명과 평안을 얻게 될 것이며, 하나님과 깊은 교통을 하는 가운데 풍성한 은총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이 글을 통해서 가장 큰 은혜를 받을 수 있는 목표와 방향과 가치관을 알게 된 여러분, 높은 경지의 신령한 복을 사모하면서 영적으로 빠르게 성장하는 지름길로 달려가게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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