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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성장론 (54)
빛과 진리  
작성자 자료부
작성일 2020-09-29 (화) 12:04
분 류 성경핵심진리
ㆍ조회: 7      
영적성장론 (54)
 (3) 성경과 기독교 역사에 나타난 성도들의 경험적 실례
⑧ 프랜시스
프랜시스와 그의 형제들은 교황으로부터 ‘작은 형제회’라는 수도단체로 인가를 받은 후에 더욱 열심히 전도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의 경건한 생활모습과 설교의 영향으로 아씨시는 점점 변화되었습니다. 프랜시스는 ‘작은 형제회’에서 모범적으로 영성생활을 잘 하였기 때문에 많은 형제들로부터 사랑과 존경을 받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흠 없이 실천하는 생활을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였는데, 특히 절제생활을 더욱 열심히 하였습니다. 또한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칠 때 자신이 실천하지 못한 말씀은 다른 사람들에게 설교나 권면을 하지 않았습니다.


프랜시스는 1211년 사순절 동안 트라시메네 호수 안에 있는 무인도에서 40일 금식기도를 하면서 큰 은혜를 받게 되었는데, 이때 가데스에서 생수를 마시는 체험을 하였습니다. 금식기도를 마친 후, 순교를 사모하는 열정이 가득 찬 프랜시스는 십자군의 힘으로 정복하지 못한 이슬람교도들을 평화의 복음으로 정복하기 위해 시리아로 향하는 배를 탔습니다. 그러나 배를 타고 가는 도중에 역풍이 불어와서 달마티안 해안에 상륙하게 되었습니다. 그곳에는 시리아로 가는 배가 없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탈리아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그 후에 프랜시스는 모로코에서 전도를 하기 위해 출발하였다가 도중에 중병을 앓게 되었기 때문에 갈 수 없었습니다.


그 다음해에 프랜시스는 아씨시로 돌아와서 사순절 동안 산 조르조 성당에서 설교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 설교를 들은 글라라는 프랜시스를 본받아 가난하게 살면서 기도하고, 기쁨과 평화가 넘치는 수도생활을 하고 싶은 마음이 불타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열망을 억제할 수 없게 된 글라라는 결국 1212년 3월 19일 밤에 부모님이나 가족들에게 말씀을 드리지 않고 출가하게 되었습니다.

프랜시스는 글라라의 머리를 삭발하고 수도서원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검은 수건과 거친 수도복과 허리에 매는 새끼줄을 주었습니다. 모든 의식이 끝난 후, 프랜시스는 베네딕또 수도원으로 그녀를 인도하였습니다. 뒤늦게 글라라의 행방을 알게 된 가족들은 힘센 젊은이들을 보내서 강제로 끌고 가려 했습니다. 처음에는 애원도 해보고 타일러 보았으나 소용이 없었으므로 완력을 쓰려고 하는 순간, 글라라는 수건을 벗고 삭발한 머리를 보여주었습니다. 글라라가 확고한 결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그들은, 그녀의 마음을 돌이킬 수 없음을 알고 돌아갔습니다.

그때부터 2주쯤 되었을 때 글라라는 성 단제로 수도원으로 쫓기다시피 옮겨야만 했습니다. 왜냐하면 아씨시에서 가장 큰 세력을 가지고 있던 글라라의 가족과 친척들이 베네딕또 수도원으로 몰려와 심한 횡포를 부렸기 때문입니다.
글라라가 출가한 날부터 16일이 되었을 때, 여동생 아네스도 수도생활을 하기 위해서 가족들에게 알리지 않고 성 단제로 수도원으로 들어갔습니다. 부모님은 맏딸인 글라라를 잃어버린데다가 둘째딸 아네스까지 빼앗겼다고 생각했으므로 크게 분노하였습니다.

그 당시 아씨시의 성주이며 글라라의 삼촌이었던 모나도는 무장한 기병을 인솔하고 수도원을 습격하였습니다. 그들은 아네스의 머리채를 잡고 사정없이 때리고 발길로 차며 억지로 끌고 나갔습니다. 아네스는 비명을 지르면서 글라라에게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언니, 언니, 날 살려줘요.” 끌려 나가는 동생의 비명을 들으면서 글라라는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때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아네스가 기절하여 쓰러졌는데, 갑자기 그녀의 몸이 천근만근이나 되는 무거운 물건처럼 무거워져서 그 병사들의 억센 힘으로도 어찌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그러자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른 삼촌 모나도는 손에 들고 있던 쇠뭉치로 아네스의 얼굴을 내려치려고 하였습니다. 그때 갑자기 큰 고통과 함께 모나도의 팔은 굳어버리고 몸은 움직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큰 능력을 본 글라라는 그들에게 돌아갈 것을 강권하였습니다.

며칠 후에 프랜시스는 아네스의 머리를 삭발하고 수도서원을 받았습니다. 따라서 프랜시스는 글라라와 아네스의 가족과 친척들로부터 미움을 받게 되었기 때문에 세 번째 연단과정을 통과하는 동안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되었습니다.
이밖에도 프랜시스는 그 당시에 내면적으로 큰 고민과 괴로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 프랜시스는 1212년 추운 겨울을 치우시 근방의 고지대에 있는 움막에서 단식과 기도를 하며 지냈습니다. 때때로 프랜시스는 절망의 늪에 빠져 허덕였습니다. 그의 내면에서는 “구원은 당신 같이 자학하는 자들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의 것이오.”라고 속살거렸습니다. 또한 그동안 자신의 모든 노력이 쓸데없는 것으로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때로는 독신생활을 포기하고 결혼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 움막에서 그는 극심한 유혹에 시달렸습니다. 이러한 유혹을 물리치기 위하여 그는 허리에 맨 새끼줄을 풀어서 벌거벗은 몸을 사정없이 채찍질하였습니다.
밤중에 프랜시스가 움막에서 기도하고 있노라면, 마귀는 그의 엄격한 고행을 중지시키려고 몰려왔습니다. 마귀는 “하나님께서 자기의 육체를 학대하는 것을 기뻐하시지 않으니까 남보다 특별하게 사는 척하지 말고 보통사람들이 사는 생활방식에 따라 행복한 가정생활을 꾸미고 살라.”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유혹이 극심하게 되자, 프랜시스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벌떡 일어나 옷을 훨훨 벗고 “이 옷은 수도회의 것이니까 찢을 수는 없다. 그러나 너 같은 얼간이는 혼 좀 나야겠다. 정신을 바싹 차리기 위해 몽둥이찜질을 당해야겠다.”고 외치면서 손에 쥔 새끼줄로 자신의 몸을 사정없이 때렸습니다. 이렇게 가혹한 고행을 하였지만 육체의 유혹은 없어지지 않고 끈질기게 몰려왔기 때문에 그는 밖으로 나갔습니다.

그 움막 밖에는 눈이 수북이 쌓여 있었습니다. 반나체의 몸으로 뛰어나간 프랜시스는 일곱 개의 눈사람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눈사람들 앞에서 자신을 조롱하는 것처럼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자, 보아라. 프랜시스야! 네가 꾸미고 싶어하는 가정이 여기 있다. 이들이 모두 네 가족들이다. 저기 있는 큰 것은 너의 마누라고, 그 곁에 있는 것들은 너의 두 아들이고 두 딸이다. 이쪽에 있는 커다란 것들은 너의 집 머슴과 하녀이다. 그리고 너는 이 식구들의 가장이다. 이 대식구들은 모두 너만 의지하고 있다. 이들은 추워 죽을 지경이다. 빨리 옷을 입혀야지! 식구가 너무 많다고? 그렇다면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그만 두어야지. 뭐, 할 수 없다고? 이 멍청한 친구야, 이 세상에서 가정을 꾸미고 살아간다면 이렇게 벅찬 거야. 이 지상에서는 그밖의 일은 생각할 겨를도 없는 거야. 네가 하나님만 의지하고 살 수 있는 것을 기쁘게 생각해라.” 그러자 끈질기게 유혹하던 마귀는 사라졌습니다. 프랜시스는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움막으로 돌아왔습니다.

또한 프랜시스는 자기 성소(聖召)에 대한 의문이 생겨 큰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세속에서 완전히 벗어나 옛날의 은수자들처럼 생활하면서 자기 영혼의 구원만을 위하여 홀로 살면 어떨까하는 생각에 깊이 빠지기도 하였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세속에서 설교자로 살게 된다면 자신의 영혼이 먼지투성이가 되지 않을까?’라고 생각하면서 큰 두려움에 빠졌던 것입니다. 프랜시스는 이 시기에 세속을 완전히 벗어나고자 하는 수많은 생각들에게 강하게 사로잡혔습니다.
이와 같이 내면적인 혼란 속에서 고민하며 갈등하던 프랜시스는 마침내 하나님께서 정해주시는 대로 순종하겠다는 결심을 하였습니다. 그러자 프랜시스는 맛세오를 글라라와 실베스텔에게로 보내어 그들을 통하여 나타내주시는 하나님의 뜻을 알기 원했습니다. 그때 글라라와 실베스텔은 기도 중에 하나님의 응답을 받고, 맛세오에게 알려주었습니다.
맛세오가 돌아오자 프랜시스는 머리를 숙이고 양손을 십자가형으로 가슴에 포개고 무릎을 꿇으며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주 예수님께서는 저에게 무엇을 하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맛세오는 글라라와 실베스텔이 예수님으로부터 받은 말씀을 전했습니다. “프랜시스여, 당신은 밖으로 나가 설교하시오. 하나님이 당신을 부르신 것은 당신의 영혼만을 구원하기 위해서가 아니오. 많은 사람을 구원하기 위하여 부른 것입니다!” 이때 프랜시스는 가슴이 뜨거워지는 성령의 불을 체험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고민하며 갈등하던 문제들로부터 해방을 받았습니다.
프랜시스는 이상과 같이 세 번째 연단과정을 다 통과하고, 하나님으로부터 풍성한 은혜를 받으면서 더욱 열심히 전도활동을 하였습니다. 프랜시스의 전기를 보면 하나님의 생명이 내주합일된 체험이나 생명수가 폭포수와 같이 항상 흘러 들어오는 체험에 대해서는 하나님께서 은밀하게 나타내시는 개인적인 체험으로만 여기면서 겸손한 마음으로 감추고 증거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⑨ 이성봉 목사
이제는 ‘한국의 무디’라고 불리우던 이성봉 목사님의 세 번째 연단과정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목사님은 1937년 성결교단에서 ‘전국부흥사’로 임명을 받아 방방곡곡을 다니면서 집회를 인도하는 가운데 수많은 성도들로부터 사랑과 존경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목사님은 당시 성결교단에 소속되어 있었지만 감리교회나 장로교회, 그밖에 어느 교회에서든지 초청을 하면 집회를 인도해주었기 때문에 점점 미움과 질투를 많이 받게 되었습니다.
결국 이목사님은 고국을 떠나 1941년부터 1945년까지 가족들은 평양에서 셋방살이를 하도록 버려두고, 만주에 가서 수많은 교회들을 돌보는 가운데 어려움을 많이 겪게 되었습니다. 이 기간 동안 이목사님은 세 번째 연단과정 즉 영성의 밤을 통과하였습니다.
만주에 간 이성봉 목사님은 처음에 봉천중앙교회를 담임하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성도들과 함께 열심히 기도하고 전도하면서 교회건축에 힘썼습니다. 그러나 그 교회는 만주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는 지역에 있었기 때문에 건물을 완성하기까지 많은 어려움을 겪어야했습니다.
어느 날 마적(馬賊) 떼들이 몰려와 교회를 빙 둘러싸고 “왜 여기다 교회를 세우느냐? 교회를 불태워버리겠다.”고 협박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이 교회를 세우는 사람이, 우리들이 보는 가운데 벌거벗고 춤을 추면 불로 태워버리지 않겠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이목사님은 하나님의 교회를 구하기 위해서 자신이 큰 부끄러움을 당하고 창피할지라도 벌거벗고 춤추는 것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비웃고 조롱하는 가운데, 벌거벗고 덩실덩실 춤을 추었습니다.
봉천중앙교회를 건축한 후에 이목사님은 그 교회를 다른 목사님께 넘겨드리고, 흩어져있는 교회들을 찾아다니면서 부흥회를 인도하기로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만주에는 여러 교파에서 세운 한국교회가 400여 개나 되었습니다. 이목사님은 이곳저곳에 흩어져있는 교회들을 찾아다니며 부흥회를 인도하는 가운데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특히 그 시대는 2차 세계대전 말기였기 때문에 교통이 매우 불편하였습니다. 당시 형편을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간증하고 있습니다.
“이때 있었던 일 가운데 잊을 수 없는 한 가지는 천진에서 하얼빈으로 집회를 인도하기 위해 가던 중에 생긴 일이었다. 천진에서 점심을 먹고 밤차를 탈 수 있는 차표를 사기 위해 오후 4시에 나가보니 아침부터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결국 나는 밤 10시 차를 타지 못했다.


그 자리를 떠나게 되면 내일 아침에 떠나는 기차도 탈 수 없기 때문에 지독하게 추운 11월 마지막 날, 온밤을 시멘트 바닥에서 수건을 깔고 가방을 베개 삼고 중국사람들과 함께 새우잠을 자게 되었는데 잠이 잘 오지 않았다. 몸은 꽁꽁 얼어붙고 중국 사람들에게서 보리쌀 같은 이가 기어 올라왔다. 야곱이 돌베개를 베고 광야에서 잠을 잘 때와 같이, 나는 큰 은혜를 받았다. 이튿날 아침식사도 하지 못하고 오전 10시 차를 간신히 탔는데, 사람들이 너무 많아 꼼짝달싹도 할 수가 없어서 가방을 들고 콩나물시루 같은 열차 안에서 11시간 동안을 시달리게 되었다.
저녁 9시경, 하얼빈역에 내리니 얼마나 추운지 견딜 수가 없었다. 마차를 타고 교회로 달려가니, 사람들이 교회 안에 가득 차 있었고, 많은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제 저녁부터 오늘 저녁까지 자동 금식을 하고 꽁꽁 얼어버린 몸으로 강단에 서니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그럴지라도 필사적으로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는 설교를 마친 후에 방에 들어가 결국 쓰러지고 말았다. 조금 후에 정신을 차리고 식사를 하였다. 그리고 잠을 자고 나니 새 힘을 얻어 그 부흥회는 참으로 은혜가 풍성하였다. 십자가가 없으면 면류관도 없고, 죽음이 없으면 부활도 없는 것이다.”


만주에서 부흥집회를 바쁘게 다니던 목사님은 어느 날 어머니의 병환이 위급하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때 목사님은 “전쟁에 나간 군인이 부모가 병들었다고 돌아갈 수 있느냐! 나는 영적 전쟁에 나선 그리스도의 정병이요, 복음의 결사대로서 전투가 한창 치열할 때 사사로운 일에 매일 수 없다.”고 결단하면서 어머니를 주님께 맡기고 기도하며 집회를 계속하였습니다. 그 집회를 마치고 삼일 동안 차를 타고 집에 와보니 그 전날 장례를 지냈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목사님은 어머니의 무덤에 찾아가서 기도하고 수고한 분들을 위로하고 집회를 위하여 이튿날 길을 떠났다고 합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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