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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결하고 깨끗한 발자취를 따라서
영성의 길  
작성자 박희진
작성일 2019-11-08 (금) 12:38
분 류 영성훈련
ㆍ조회: 11      
순결하고 깨끗한 발자취를 따라서
독일의 신학자 하르낙(Harnack) 교수는 “수도원은 교회가 박해받을 때 지켜주고, 세속에 빠질 때 건져주었고, 이단 사교가 일어날 때 바른 신앙을 지켜주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중세 교회가 어두워졌을 때, 수도원 운동이 일어나 도덕적 타락을 막아주고 정화시키는 영적 수원지가 되어 세속 교회를 깨워주었다. 수도적 영성생활은 신앙의 매우 중심적 요소라 할 수 있다. 영성의 회복은 교회와 성도의 사명이다.
오늘날 한국교회는, 영성이 메마르고 세속에 깊이 빠진 모습들을 많이 드러내고 있다. 혼탁해진 교회와 성도들의 모습은 세상에서 맛을 잃은 소금과 같이 뒹굴고 있다. 경건 없는 영적 위기에 빠져 있는 한국교회를 위해 절실하게 요구되는 것이 바로 수도원운동이다. 이런 현실 앞에서 늘 생각나는 곳은 한국 개신교 수도공동체라고 일컬어지는 동광원(東光園)이다. 영적인 위기와 침체가 오면 언제나 생각나는 곳이다.
동광원을 알게 된 지도 어언 30년, 그동안 동광원에 계신 어르신들에게 받은 사랑은 말로 다 표현 할 수가 없다. 부모님이 사시는 임실을 곁에 두고도 남원 동광원을 더 자주 가면서 좋아했다. 그곳에 가면 맑은 샘물이 흘렀다. 이현필 선생님을 통해서 일평생 수도자로 순결하게 살아오신 분들의 깨끗한 삶을 보고 들으면 영혼의 고향에 온 것 같은 포근함을 느꼈다. “어떻게 그토록 철저한 절제 생활과 순결한 삶을 살았을까?” 맨발의 성자 이현필 선생님에 관한 말씀을 방문할 때마다 수십 번 들었는데도, 들을 때마다 새롭고 은혜가 넘쳤다. 오북환 장로님, 김준호 선생님, 벽제의 박공순 원장님, 김춘일 수녀님, 한 장로님 등을 통해서 이현필 선생님이 이 세상을 떠나시는 날 밤을 생생하게 들었다. 그분들 역시도 이 땅의 나그네 인생을 마치고 그토록 열망하고 바라던 저 천국에서 환희의 찬가를 부르며 살고 계시다.
이현필 선생님을 만나 모든 편안함과 안락함도 다 포기하고 일평생 수도자로 살아오신 원장님의 간증과 스승의 대한 사랑은 수십 번 들었다. 어느 때는 밤늦게까지 듣고 또 들어도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나의 친어머니보다 나를 더 아끼시며 영적인 삶을 지도해 주신 참으로 고마운 분이시다. 가을이 되면 직접 지으신 농작물과 감과 감자 등을 보내주시곤 하셨다. 한동안 연락이 뜸하면 전화를 하셔서 안부를 묻곤 하셨다. “박 목사님, 근래에 한 번도 못 내려오시는데, 무슨 어려운 일이라도 있으신지요? 우리도 이현필 선생님이 떠나시고 어떻게 살까 걱정했는데, 우리 주님께서 다 살게 해주십니다. 저 위에 어르신들이 다 알아서 해주십니다.” 이 교훈은 내 가슴에 깊이 새겨져 지금도 계속 살아 움직이고 있다.
지금 원장님은 뇌경색으로 쓰러지셔서 중환자실에 계시다. 이제 곧 천국으로 가실 모양이다. 마음이 먹먹하다. 그토록 그리워하던 하나님을 만나러 가시려는지….
그 순결한 향기는 우리 마음에 영원히 남겠지만 신앙의 산 증인 한분이 천국으로 가신다고 생각하니 숙연하고 마음이 허전하기도 하다. 순결하게 사셨던 선생님의 삶을 좇아 평생을 사셨던 순결한 삶. 동광원 언님들의 삶을 바꾼 선생님은 동광원의 창립자 맨발의 성자라 불리는 이현필 선생이다.
이세종 선생님의 영향으로 화학산에서 3년, 지리산에서 4년. 7년의 산중 기도와 깊은 영성훈련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에 불타는 거룩한 성인이 되셨다. 가난과 순결을 사모했던 그분은 청빈의 사도, 성 프랜시스와 많이 닮았다. 세상의 요란함을 뒤로 하고 아무 욕심도 없이 가난하고 자비롭고 겸손하고 순결하고 고요한 성자가 되어갔다.
이현필 선생님은 제자들에게 “순결하고 깨끗하게 살아라! 가난하게 살아라!”를 자주 강조하셨다. 또한 순결한 삶과 예수님을 따라 사는 청빈의 삶이야말로 세상을 이기는 길이라고 하였다. 생의 끝 무렵에도 광주 동광원에서 마지막 집회를 하고 난 뒤 계명산에서 일주일 동안 공동체 식구들과 함께 보내셨는데, 제자들 한 사람 한 사람을 불러놓고 축복 기도를 해주면서 “끝까지 동정을 지켜라. 깨끗이 살아라. 청빈하게 살라. 음란은 죄다”라고 유언하셨다. 수의도 벗어서 남에게 주라고 했고, 자기 시신은 죄인의 시체니까 관을 씌우지도 말고 분상도 만들지 말고, 많은 사람이 밟고 지나가라고 평토장하라고 했다.
사람이 죽을 때에는 다 슬프거늘 기쁨이 충만해서 “기쁘다, 기쁘다. 오, 기쁘다. 나는 이 기쁨을 못 참겠네, 못 참겠네.”라고 외치셨다. 숨이 막혀오면서도 다시 돌아올 때마다 “아이고 기뻐! 오 기쁘다. 이 기쁨을 종로 네거리에라도 나가서 전하고 싶다.”고 외치셨다. 환희의 물결이 터져 나온 것이다. 임종 수일 전부터 성령의 기쁨이 밀려와서 어쩔 줄 모르더니 절정에 이른 것이다. 마지막 가는 길을 지켜보던 제자들에게 “저는 먼저 갑니다. 다들 다음에 오시요!”하며 고요히 눈을 감았다. 무릎을 꿇고 앉은 채 얼굴은 하늘을 향해 바라보면서 마지막 숨을 거두었다. 때는 1964년 3월 8일 새벽 3시였다. 마치 겟세마네 동산의 예수님을 그린 성화의 모습이랑 같았다고 한다.
동광원의 가족들 중 박금남 어머니는 103세에 하늘로 가신 분이다. 그분은 누구든지 만날 때마다 “사람은 순결하게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 믿는 사람은 깨끗하게 살아야 합니다. 깨끗하게 사세요. 예수님 잘 믿으세요.”라고 인사를 하셨다. 좋은 음식이 들어오면 모아 두었다가 살며시 다른 사람을 주셨고, “언제나 감사, 감사, 하나님 감사” 하면서 맨 바닥에서 허리를 대고 새우잠을 주무셨다. 속옷을 입지 않는 이유를 묻자 “우리 주님은 내의도 입지 않고 벌거벗으셨는데, 이 죄인이 어떻게 따뜻한 내의를 입을 수 있습니까? 누추한 마구간과 산에서 기거한 우리 주님을 생각할 때 나는 너무 부를 누리고 살았습니다.”라고 하실 뿐이었다. 마지막 순간에도 22일간 음식을 입에 대지 않으셨다. “103년 동안 너무 많이 먹었으니 무슨 미련이 있어. 하나님 나라 갈 때에는 깨끗하게 가야지. 하나님 나라는 먹는 것으로 가지 않아. 깨끗함으로 가는 곳이야.”
주님 품으로 돌아가신 후 장롱을 열어보니 텅 비어 있었다. 옷 한 벌과 홑이불과 베개 하나가 전부였다. 그분의 청빈하고 가난한 삶 앞에 한동안 내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그분 앞에 나 자신이 너무 사치스럽고 부요해서 송구스럽고 부끄러워 서 있을 수가 없었다. 마음으로부터 고개가 숙여졌다.
영적 거장, 이현필 선생님을 만난 모든 분들은 이전의 삶을 기꺼이 내던지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그분들은 한결 같이 청빈하고 순결한 하나님의 딸로, 거룩한 어머니들로 변화되어 주님의 품으로 돌아가셨다. 이제는 나의 또 한 분의 영적 어머니, 김금남 원장님이 주님께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계신다.
순결한 백합의 향기를 삶에 가득 머금었던 나의 어머니, 내가 쓰러지고 지칠 때마다 따뜻한 손길로 격려해주셨던 나의 영적 어머니를 뒤로 하고 송정리 역에서 기차를 기다리는데 눈물이 계속 흘러내린다. 벌써부터 온화한 미소와 얼굴이 그리워진다. 내 가슴에 눈부신 별들을 수놓았던 순결한 어머니들과 이현필 선생님의 거룩한 발자취가 몹시도 그리운 밤이다. 이 못난 수도자도 순결하게, 청빈하게 그 길을 끝까지 따라가길 기도를 드려본다. 순결하고 깨끗하게 살라는 말씀을 다시 다짐해 본다.


박희진 목사(성결수도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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